ADVERTISEMENT

여성 수석졸업자가 말하는 대학생활| "4학년 한해는 책 속에 파묻혔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근래 들어 각 대학의 수석 졸업은 대부분 여성들이 차지하고 있다. 특히 금년도에는 여자대학인 이화여대를 제외하고라도 서울대·연세대·고려대·서강대 등 세칭 일류대학교의 수석은 모두 여성이 차지했다. 이들 엘리트여성들을 한 자리에 모아 수석의 비결과 대학생활의 회고, 장래의 포부를 들어봤다.<편집자주>

<좌담 참석자>우미애(연세대 전자공학과졸·데이터통신 근무) | 설진아(고려대 신문방송학과졸·교육방송국 근무)| 김희진(이화여대 약학과졸)| 김선영(서강대 신문방송학과졸·MBC 근무)
이=수석졸업이라고 하니 모두들 어떻게 그렇게 공부를 잘 했느냐고 해요. 그렇지만 제 경험에 비춰보면 학점이 좋다고 해서 그 과목을 잘아느냐하면 그것은 아닌 것 갈아요. 오히려 제게 어려웠던 과목의 학점이 딴 과목의 학점보다 좋기도 했으니까요. 학문의 난이도와 성적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 게 대학학점인 것 같아요.
김=우리 세대는 졸업정원제 제l세대이기 때문에 성적에는 상대평가가 적용됐지요. 제가 시험을 잘 봤다 해도 잘본 학생들이 많으면 학점은 내려가고, 시험이 어려울 경우는 그 반대가 가능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수석졸업자발표가 날 때까지 제가 수석을 한지도 몰랐어요.
우=남녀공학이 여자대학과 다른 점이 있다면 성적에 대한 비밀이 덜하다는 것을 들 수 있어요. 제 경우 보통 과목당 네 번 시험을 치기 때문에 주로 도서실에서 같은과 친구들과 모여서 공부하곤 했는데 시험이 끝나면 『너 몇 점이더라』하고 가르쳐줘요.
이=어떤 교수님은 교실 안에서 성적을 공개하기도 하지요. 1,2학년 때는 남학생들보다 성적이 좋으면 놀림을 받기도 했지만 학년이 올라가니 점잖아(?) 지더군요. 하기야 저만을 위해서 노트필기를 한 적이 없을 정도니까 인심을 얻은 것인지도 모르지만….(웃음)
김=학점을 잘 받으려고 특별히 공부한 적은 없었어요. 제 경우 4학년에 국가고시·졸업시험 등 굵직한 시험들이 몰려 있어 마지막 한해를 도서관에서 보낸 정도지요.
이=저는 주로 집에서 공부했어요. 특히 전공과목 교수님 중엔 예고 없이 「팝 퀴즈」를 즐겨 출제하는 분이 많아 평상시 복습을 해둔게 습관이 됐지요. 어떤 교수님은 한 학기에 12번이나 시험을 칠 정도였거든요.
우=대학수업을 통해 제가 가장 불만스렵게 여겼던 것은 공부하는 게 자율적이지 못한 점이었어요. 모든 과목이 강의위주로 연관돼 강의범위 안에서 시험을 치고 학점을 따는 식이어서 강의와는 상관없이 컴퓨터 제작 등 다른 분야에 관심을 가진 학생은 거의 틀림없이 성적이 나빴거든요. 제 생각으로는 오히려 대학교육을 통해 어떤 특정분야에 관심을 갖도록 유도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 같습니다.
김=실험기재 부족은 한시바삐 보완돼야 합니다. 덧불여말하고 싶은 점은 졸업정원제가 도서실로 학생들을 끌어 모으는데는 성공했지만 대학생활을 「만남의 장」으로 인도하는데는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이=흔히 사회에서는 교수-학생간의 대화가 단절됐다는 지적을 하지만 졸업정원제가 학생-학생간의 대화도 단절시켰다고 봅니다. 일례로 데모가 나면 학생들은 참여자·방관자·자기생활만을 하는 이 등 세 그룹으로 나뉘고 서로간에도 대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어요.
설=학생들의 자율성이 학교의 자율로부터 보장받아야 학원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가능한 한 대학생활을 통해 간접적인 사회경험을 할 수 있어야 하구요.
이=졸업을 앞두고 가장 고민했던 것이 바로 취직문제였습니다. 전공과 관련된 직종을 찾아보니 여성이란 제약이 없는 게 아나운서 밖에 없더군요.
우=제가 대기업을 피해 취업한 것도 같은 대졸사원으로 동등한 대접을 해주지 않는 남녀차별풍토가 싫어서였어요.
설=여성들의 사회진출이 어려운 것은 여성들의 용기, 기업의 도덕적 책임의식 결여, 정부의 여성정책 지원 미흡으로 인한 악순환으로 여겨집니다. 특히 유교적 가치관이 뿌리깊은 남성들의 대여성관이 문제지요.<정리=홍은희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