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27)-제 81화 30년대의 문화계(160)|다방「69」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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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박태원과 이상은 앞에서 말한 김소운이 경영하는 아동잡지사에서 만나 그 뒤로 가까와져 이상은 다동7번지의 광교천변에 있는 박태원 집을 무상 출입하게 되었다.
1933년에는 두 사람이 다같이 구인회에 입회하였고, 다른 사람들은 직업이 있어 바쁘게 지냈지만 두 사람은 일정한 직업이 없으므로 늘 만나 열심히 구인회사업을 계획해갔다. 1934년 여름 박태원이 조선일보에 『구보씨의 일일』이라는 단편소설을 실었는데, 그때 이 상이 「하융」(하융)이라는 펜 네임으로 삽화를 그렸다. 이 삽화는 종래의 신문삽화와 다른 멋장이 삽화라고 젊은 사람들한테 인기가 좋았다.
다방「제비」는 돈이 없어 차를 구비해놓지 못했고, 손님이 없으니 영업이 되지 않았다. 겸해서 이상과 동거하는 금홍이는 제멋대로 출입이 함부로여서 집에 안 들어 오는 날이 많았다. 그러더니, 어느날 이상이 집에 들어가 보니 금홍이는 새까맣게 낡은 버선을 벗어놓고 봇짐을 싸 가지고 집을 나가버렸다.
그 뒤 얼마 안가 「제비」다방도 월세가 많이 밀린 까닭으로 집주인한테 가옥명도를 당해 내쫓기게 되었다. 이것이 1935년 9월의 일이었다.
그러다가 어떻게 된 일인지 이상은 인사동에 「쓰루」(학)라는 카페를 내고 박태원·정인택등 여러 친구를 불러 한턱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 카페도 얼마 못가 문을 닫고 다시 종로에 있는 광교다리 못미처에 다방「69」를 내려고 했다. 「69」즉 식스 나인이란 말은 풍속괴난에 걸리는 에로틱한 것으로 종로경찰서에서는 이런것을 알 까닭이 없으므로 다방허가를 내주었다. 광교 큰길을 지나다보면 식스 나인이라고 간판을 써놓고 그 간판 가운데 69의 도안을 그려놓았다.
이것이 무슨 뜻인지 아는 사람은 마음속으로 웃음을 금치 못했지만 모르는 사람은 무슨 뜻인가 하고 그냥 지나쳤다.
그러다가 다방을 열려는 2, 3일전에 이상은 종로경찰서에 호출을 당하였다. 경찰은 이상을 보고 경찰을 우롱하는 나쁜 놈이라고 갖은 욕설을 다하고 허가를 취소한다고 하였다. 어떤 사람이 경찰에 이런 풍속괴란의 다방을 허가 주면 어떡하느냐고 항의한 까닭이라고 한다. 일본 경찰서장은 깜짝 놀라 자기네의 무식은 제쳐놓고 노발대발해 다방을 금지시켰다.
이상은 속으로 『이놈들!』하고 비웃으며 경찰을 골려준 것을 재미있게 생각하였다.
이상은 이런 장난을 해 일본경찰의 콧대를 꺾어놓았지만 다시는 종로경찰서 관내에서 영업허가를 얻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명동에 또 다방「무기」(맥)를 냈다. 그러나 이 「무기」다방도 오래가지 못하고 경영에 실패하여 문을 닫았다.
동거하던 금홍이가 온다간다 말없이 자취를 감추었고 카페 「쓰루」와 다방「69」「무기」도 경영실패로 문을 닫고, 그렇다고 작품도 잘 써지는 것이 아니어서 여러 가지로 우울한 심정을 달래기 위해 이상은 훌쩍 서울을 떠나 평안도 성천 등지로 나그네길을 떠났다. 박태원과는 날마다 만나는 터였는데, 이 사람에게도 아무말없이 행방을 감추었으므로 친구들이 자살을 하지 않았나 하고 몹시 궁금해했다.
한 달쯤 되어 어느 날 밤 이상은 돌연히 서울에 나타나 박태원의 방 들창문 밖에서 『구보(구보), 있소?』하고 박태원을 불렀으므로 그 방에 모였던 친구들이 놀라 『이상이 아냐?』하고 반겼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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