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철도차량 정비창 페이트공 이은숙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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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기차나 객차의 수리·개조 작업을 맡고 있는 서울 철도차량 정비창의 페인트공 이은숙씨(45). 레일 위를 부지런히 다니면서 남루해진 객차에 페인트로 산뜻하게 새 옷을 입히고 있다.
15년째 7만여 평이 넘는 이곳 철도차량정 비창에서 일해온 그는 내 집 단장하듯 객차를 돌본다고 했다.
『남자부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같은 일을 한다는게 자랑스러워요. 남들은 쇳덩어리 일을 여자가 어떻게 하느냐고 하지만 구석구석 여자들의 손길이 필요한걸요.』
구정을 앞두고 밤 10시까지 야간작업을 벌이고 있는 그는 주부직원 13명에게 일감을 나누어주는 일에서부터 하루일과를 시작한다.
그가 맡고 있는 차량은 새마을호와 무궁화호등 고급 객차의 보수작업.
객차수리는 객차 1량을 고정, 1량에 2백명의 수리공이 투입돼 내장·문·하체 등의 각종 보수작업에 나서게된다. 수리기간은 3∼4일정도.
그는 의자보수, 시트갈기, 선풍기·환풍기청소 및 바닥청소와 객차의 몸체부분 페인트작업을 맡고 있다.
『3년 정도 경력이 붙으면 객차 페인트 일을 할 수 있어요. 칠 자체가 섬세한 작업이어서 화장독처럼 페인트칠도 부작용이 있더군요. 정성을 쏟지 않으면 방금 칠한 부분이 갈라지거나 틈이 생기게 되지요.』
숙련공인 그도 기름걸레 닦기→긁어내기→초벌페인트→연마 등 10여 가지의 세부공정이 완전히 끝나야 죈 가슴을 펼수 있다고 한다.
객차 내부를 청소하다보면 멀미도 나고 기차를 탄 것 같은 착각도 일으킨다는 그는 67년 백마부대 용사였던 남편이 월남전에서 전사한 후 원호대상자 가족으로 철도청에 취업하게된 것.
당시 7백원 하던 사글세방 한 칸에서 2남1여를 키운 지 15년. 지금은 17평 짜리 내 집도 마련했고 아이들도 교사·은행원, 그리고 막내가 올해 대학에 합격하는 복도 누리게 됐다. 보너스를 포함해 한달 봉급은 45만원.
『아마 일을 안하고 살았더라면 남편 없이 혼자 사는 것이 쉽지 않았을 거예요. 출근해서 일에 몰두하다보면 잡념도 사라지고 외로움도 잊게되지요.』
어렵고 힘들 때마다 남편이 묻힌 국립묘지에 가 마음을 가다듬는다는 이씨는 막내가 대학을 졸업하는 날 그가 수리한 새마을호를 타고 온 가족 나들이를 해보고 싶다고.
58세 정년이 될 때까지 철도공무원으로 몸담고 싶은 것이 그의 꿈이다. <육상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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