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인사이드] 남의 프로필과 사진으로 소개팅앱에서 거짓 행세해도 무죄…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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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 김모(28·여)씨는 2009년부터 3년 동안 사귀던 남자친구와 헤어졌습니다. 이후 그 남성이 다른 여성 A씨와 교제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김씨는 둘의 사이를 갈라 놓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2014년 1월 자신의 스마트폰에 소개팅 애플리케이션을 깐 김씨는 자기소개란에 A씨의 인적사항을 기재했습니다. 카카오톡 프로필에 적힌 A씨의 나이·지역·직업·키 등 개인정보와 함께 사진까지 가져와 A씨 행세를 한 것이죠. 김씨는 대화를 나눈 남성들에게 A씨의 휴대전화 번호를 자신의 번호인 것처럼 알려주었고, 실제 남성들은 A씨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합니다.

결국 김씨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상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이 법 70조 1항은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공연하게 사실을 드러내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같은 조 2항은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공연하게 거짓의 사실을 드러내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해 놨습니다.

법원의 판단은 김씨의 행위가 이들 처벌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1심과 2심은 “A씨가 정신적 피해를 입기는 했지만 김씨가 인적사항을 도용한 것일 뿐 어떤 '구체적인 사실'을 적시한 것이라 보기 어려워 명예훼손으로 볼 수 없다"고 결론 냈습니다.

비록 김씨의 행위로 인해 A씨가 정신적인 피해를 입은 사정이 인정되기는 하나 법률을 엄격히 적용해 김씨를 처벌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대법원 2부(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최근 이같은 원심을 확정했다고 27일 밝혔다.

이런 내용을 시정하기 위해 지난해 7월 온라인 공간에서 다른 사람을 사칭하는 행위만으로도 형사처벌할 수 있도록 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아직 국회에 계류 중입니다. 이 개정안에는 다른 사람의 이름이나 사진·영상 등을 사칭하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서복현 기자 sphjtbc@joongn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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