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고백』전달한 종교화가|중앙갤러리의 「루오판화전」을 보고…이일<미술평론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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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흔히 「루오」를 두고 「20세기 최대의 종교화가」라고들 한다.
그 말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루오」를 막연하게 「종교화가」, 다시 말해서 단순히 종교적 주제를 다룬 화가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부른다면 그것은 그의 예술의 정수를 놓치는 것이 된다. 중세 미술은 일단 차치하고라도 르네상스이래 얼마나 많은 종교화들이 그려져 왔는가. 그 종교화는 실상 적어도 17세기이래 세속화의 길을 걸어 왔고 급기야는 비속한 「성상화 (성상화)」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루오」 는 무엇보다도 우선 화가로서 위대하며 그러면서 동시에 종교화로서 또한 유니크한 존재다. 그리고 그 독자성은 그의 종교화가 그 주제가 종교적인 것이든 아니든을 막론하고 본질적으로 종교적이라는데 있다. 다시 말해서 「루오」 는 「광대」의 화가, 「창부」「재판관」, 나아가서는 「풍경」의 화가일 때에도 본질적으로 종교화가라는 말이다. 어쩌면 광대라든가 창부 또는 재판관이라는 「모독적」인 주제 속에서 오히려 보다 강렬한 그의 종교적 신앙의 발로를 찾아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루오」의 비교적 초기의 작품 (1902∼14) 을 지배하고있던 항거와 분노, 때로 부드러움이 깃 든 그 감정은 그후 약10년 동안 (1914∼25)에 당당하고 엄숙한 형태로 경화되며 1930년경 후로는 어딘지 우수 어린 평화를 되찾고 만년에 이르면서 차츰 해맑은 광희에 찬 것이 되어간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정신적 광명이다.
이 과정에 있어 「루오」예술의 일관된 기조를 이루고 있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그의 깊은 종교심이다.
그에게 있어 『가장 적의에 차고 배은망덕하고 또 불순한 인간의 눈 깊숙이에도 신이 머물고 있는 것이다』 (「루오」자신의 말) 그는 이들 지탄받는 인간을 통해 신을 사랑하고 모든 인간을, 그리고 모든 인간의 운명을 사랑한다. 그리하여「루오」 는 그의 회화를 통해서 또 그의 회화 속에서 그 버림받은 영혼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있는 것이다. 또 그럼으로써 「루오」 자신의 영혼이 그들의 영혼과 맞닿으며 신과 맞닿는다.
「루오」 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진정한 예술작품 속에는 열렬한 고백이 담겨져 있다.』 그것은 곧 신을 갈구하는 영혼의 고백이겠고 그 영혼의 고백을 그는 그의 회화를 통해 전달한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진정한 의미의 종교화가로서의 「루오」 의 위대성이 있는 것이다. 『루오판화전』 은 17일까지 일요일도 쉬지 않고 중앙일보 새 사옥 중앙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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