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 레터] 커밍아웃의 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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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밍아웃(Comming out)은 알다시피 성적 소수자가 성 정체성을 밝히는 일입니다. ‘벽장 속에서 나오다(Coming out of the closet)’는 말에서 유래했습니다. 커밍아웃은 권리 선언이자, 동시에 위험을 감수하는 선택이기도 합니다.

오늘 새누리당에서 정치적 정체성에 대한 커밍 아웃이 줄을 이었습니다. 어제 유승민 의원이 탈당하고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면서 생긴 일입니다. 오전엔 이한구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장이 유 의원에 대해 “당을 모욕하고 침을 뱉으며 자기 정치를 위해 떠났다”고 비난했습니다. “당에 입당해 꽃신을 신고 꽃길만 걸어왔던 사람”으로 규정하기도 했습니다. 공천 결정을 계속 미뤘던 지난 며칠과 비교하면 전격적인 커밍아웃입니다.

오후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5개 지역 무공천’ 선언을 했습니다. 유 의원, 이재오 의원 지역구 등에 다른 사람을 공천한 안을 당 대표로서 사인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친박''비박'의 갈림길에서 확실한 정체성을 보인 셈이지요. ‘옥새 투쟁’이 된 김 대표의 결정을 대선을 염두에 둔 커밍아웃으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유 의원은 단번에 이번 총선 드라마의 주인공이자, 한국 정치의 아이콘이 됐습니다. 큰 꿈을 꿔 온 사람들 입장에선 엄청난 경쟁자의 등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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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마음을 알게 돼서 시원하기는 한데 찜찜하기도 합니다. 이번 총선도 최선을 찾는 선거에서는 멀어지고 있는 듯해서 그렇습니다. 승부의 추는 분열한 야권과 유승민 갈등을 겪은 새누리당 중 어느 쪽이 타격을 덜 입느냐에 달려 있는 듯 보입니다. 누가 자살골을 덜 먹느냐를 중심으로 축구를 봐야한다는 얘기입니다. 매번 최선이 아니라 최악을 피하는 선택을 해야 하는 유권자는 지쳐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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