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리포트] 무더기 재건축 허용 행정 형평성 어디 갔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1면

요즘 재건축을 비롯한 각종 개발사업이 매우 까다로워졌다. 무분별한 개발을 막기 위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관련 기준을 대폭 강화한 때문이다.

최근에는 서울시가 재건축 허용 연한을 최고 40년까지 연장키로 함으로써 재건축 가능 판정을 받은 단지가 아닌 경우 사업성이 크게 떨어지게 됐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규제 강화로 발목이 잡히게 된 조합들의 반발이 거세다. 모든 일이 그렇듯 손해를 보는 쪽에서는 설령 정부 정책이 불가피한 사안일지라도 불평이 나올 수밖에 없다. 간발의 차이로 규제에 묶여 사업 추진이 어렵게 된다면 가만히 있을 당사자가 얼마나 될까.

더욱이 멀쩡한 아파트는 재건축이 허용되는데 난방이 제대로 안될 정도로 낡은 집은 불가 판정을 받았다면 불이익을 당하는 사람들의 심정이야 오죽하랴. 앞뒤 잴 것 없이 그냥 정부나 행정관청에 쳐들어가고 싶은 감정을 억제하지 못할 것이다.

재건축 기준 강화 등의 내용을 담은 도시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이 지난 1일부터 시행되면서 재건축을 둘러싼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다.

그동안 재건축 추진을 위해 끊임없이 공을 들여왔던 많은 아파트 단지들이 규정 강화로 장기 표류의 운명을 맞게 됐다. 조만간 사업이 추진될 것으로 믿었던 단지마저 발목이 잡혀 분위기가 냉랭하다.

이런 가운데 서울 강남.서초.강동.송파구 등 이른바 강남권 지자체들은 도정법 시행 이전에 소위 끗발이 있다는 단지들에 대해 무더기로 재건축의 길을 열어줘 말썽을 빚고 있다. 이들 지역에서 한달 새 무려 20여 단지가 재건축 허용 판정을 받았다.

재건축 허용판정을 받은 단지 중에 멀쩡한 아파트와 고급빌라가 포함돼 있는 반면 너무 낡아 헐어야 할 입장인데도 주민들의 영향력이 약해 이같은 혜택을 보지 못한 곳도 적지 않다는 점에서 형평성 문제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저밀도 단지는 고밀도 재건축을 허용하고, 고밀도 단지는 지금의 가구수대로 짓는 1대 1 재건축까지 불허한다는 것은 두고 두고 논란거리가 될 수 있다.

서울의 집값 폭등을 부채질한 재건축의 촉진을 환영하지 않는다.

자원도 풍부하지 않은 우리의 사정을 감안할 때 선진국에서는 최고 1백년 이상 간다는 콘크리트 건물을 준공 후 20~30년만에 허문다는 것은 낭비를 넘어 '사치'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차피 해야 할 재건축이라면 행정의 형평성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최영진 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