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당의사 김영춘 의원 "한나라는 도로 민정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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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탈당 의사를 밝힌 김영춘 의원은 최근 자신의 홈페이지에 ‘탈당에 대하여’라는 글을 올리고 “제가 몸담고 있는 정당이 점점 과거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면서 1980년대 민정당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며 “재선을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정치의 기득권 구조를 타파하기 위해 도전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이런 현상은 김영삼 정권 말기부터 진행돼 이회창 전 총재 체제에서는 거의 ‘민정당 복고’가 이루어졌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지난 2월말부터 대선 패배의 충격이 어느 정도 가시자 공공연히 ‘색깔이 다른 놈들은 나가라’는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들을 수 있었다”며 “그런 분위기에서 당 쇄신은 물 건너가고 ‘도로 민정당’에서 정치를 계속할 것인가를 놓고 본격적인 고민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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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김영춘 의원이 홈페이지에 올린 글>

탈당에 대하여

보름 전, 제가 탈당을 고민한다는 신문기사가 나고서부터 참으로 많은 분들로부터 만류나 격려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제 홈페이지의 게시판이나 이메일을 통해서도 역시 많은 분들이 말씀을 주셨구요. 이제 어느정도 마음정리도 되었고, 며칠전 자유게시판의 ‘사투왕’님의 글처럼 제 심경을 궁금해하는 분도 계셔서 이 글을 올립니다. 그동안 도와주신 분들께 이해를 구하는 과정과, 함께할 동료의원들과의 시기 조정 때문에 지연되었습니다만 이번 주말을 지나면 탈당선언을 하게 될 것입니다. 한나라당의 새 지도부가 선출되고 당직자 임명도 마무리되었기에 한결 홀가분한 심정으로 당을 나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난 몇 달은 참 힘든 기간이었습니다. 대선 패배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의 개혁이 다수 의원들의 조소 혹은 몸사림 속에 용두사미로 끝나고 난 후, 저는 심한 회의감에 빠져 시간을 보냈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그런 회의와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고쳐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현실정치에서는 조급함보다 긴 호흡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점점 더 과거로 회귀하는 당의 모습을 보면서 저는 제가 몸담고 있는 정당이 그 체질과 문화의 면에서 80년대의 민정당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사실 이런 현상은 김영삼정권 말기부터 진행되어 이회창체제에서는 거의 민정당복고가 이뤄졌습니다. 지난 5년을 좌지우지했던 실세들이 바로 민정당 출신들이거나 그들과 동화된 사람들이었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혁파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이 있었던 것은 이회창대통령 만들기의 필요 때문이었습니다.

좌우지간 올 2월말부터인가 대선 패배의 최초충격이 어느 정도 가시자 공공연히 색깔이 다른 놈들은 나가라는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들을 수 있었습니다. 소위 개혁파라는 너희들만 나가면 우리끼리 잘 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 분위기에서 당 쇄신은 물건너 가고 ‘도로 민정당’에서 정치를 계속할 것인가를 놓고 저의 본격적인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막상 5인의 탈당 결행이 공개된 지금 이 시점에도 속으로는 잘 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을 것입니다.

물론 한나라당의 보수 정치인들 중에는 합리적이고 좋은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저는 그 분들이 지금까지처럼 너무 몸사리지 말고 보수 본류의 입장에서 극우, 수구의 목소리를 제어해서 한나라당을 정말 도덕적이고 합리적인 보수정당으로 개변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보수주의자들이 보신주의자와 동의어가 되지 않을 때 한나라당의 미래가 열린다는 것이 떠나려는 저의 주제넘은 기대입니다.
지난 6. 26 전당대회를 치르고 난 후 제 탈당 문제를 놓고 지구당 당직자들 및 지지자들과 상의하는 자리를 여러 차례 가졌습니다. 광진갑구의 지구당위원장으로서만 9년, 참 정이 들대로 든 분들과의 마음아픈 자리였습니다. 물론 대다수는 반대였습니다. 한나라당에 대한 배신행위라는 열성당원들의 반발도 있었고, 위원장의 뜻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한나라당을 떠나서 당선이 되겠느냐는 현실적 이유에서의 반대가 주종을 이루었습니다.

재선만 되고나면 마음대로 하라, 큰 정치인이 되기 위해서는 느긋하게 기다리고 참을 줄도 알아야 한다는 분들도 있었죠. 우리 지역구에서는 많은 분들이 제가 한나라당으로 나서면 내년 재선이 무난하다는 생각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돌아가는 정세도 한나라당에 반사이익을 안겨줄 공산이 크니 더할 나위 없죠. 다 저를 아끼는 심정의 발로에서 하시는 반대들이라 더욱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그런 배신론, 현실론에 대해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또 이 글을 읽는 분들께도 함께 말씀드립니다. 대강 이런 취지입니다.
“저는 지금 대한민국이 큰 시련의 시기, 도약이냐 추락이냐의 분기점에 서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 정치는 그런 엄중한 시기를 감당할 능력도 형편도 안됩니다. 여당과 야당간의 원색적인 증오와 대립, 그것을 계속 재생산해내는 지역감정의 물결과 그 배후의 정치기득권층, 이런 분열의 정치를 갖고서는 대한민국은 망합니다. 스스로 나라의 발전에 복무하는 생산적인 정치를 할 수도 없고, 정부의 실정을 효과적으로 견제하는 대안의 정치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 뿌리는 망국적인 지역주의 정치입니다. 한나라당도 여기서 자유롭지 못하므로 저는 당을 나가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과 새로운 정치, 새로운 정당을 건설하는 도전을 하고 싶습니다.

당장은 무모하게 보일지 몰라도 저는 우리 국민들을 믿습니다. 지역주의가 가장 극심하다는 지역들도 결국 서로 증오하는 정당이 아닌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싹쓸이 투표를 합니다.

이제 3김 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년 총선까지 한나라당, 민주당체제로 치르게 되면 지역주의정치는 그 후계맹주들에 의해 고착화되어 버릴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재선을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 정치기득권구조를 타파하기 위해 도전에 나서려는 것입니다.

지금의 정치로는 이 나라를 선진국가로, 올바른 통일로 이끌 수 있는 비전의 국가로 만들 수 없습니다. 새롭게 만들어질 정당은 선진통일국가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비전과 정책을 가진 정당이 될 것입니다. 지금의 한나라당과 민주당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새로운 정당을 만들어 그 꿈을 실현하는데 도전하겠습니다.

국민들에게 새로운 정치세력의 떡잎을 내보이고 희망의 싹수를 제시한다면 바로 그 국민들이 정치를 바꾸어 줄 것입니다. 하지만 앞장은 국민이 아니라 국회의원들이 서야 합니다. 그게 이 나라의 국회의원 된 자의 도덕적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기존의 제 지지자들뿐만 아니라 우리 광진갑구 주민들께서도 다수가 결국은 이런 저의 충정을 이해하시고 도와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물론 무조건 한나라당, 무조건 민주당 이라는 분들은 어렵겠지만요. 저는 다음 선거에서 정치혁명이 일어날 것이라고 믿습니다만 설령 성과가 적다고 하더라도 이 깨져 마땅한 정치판에 의미있는 균열이라도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겠습니다.

그런 노력과 성과들이 밑거름되어 다음 선거, 그 다음 선거에서는 점차 점차 우리들이 희구하는 정치의 모습들로 완성되어 나가겠지요. 저는 그 도정에서 작은 십자가하나를 지고 뚜벅뚜벅 걸어가겠습니다.

지켜봐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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