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올리가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기업인수와 관련해서는 원래 말들이 많다. 최근 영국과 러시아에서는 잉글랜드 프로축구의 명문인 '첼시'를 둘러싸고 화제가 만발이다. 2002~2003년 프리미어 리그에서 4위를 차지한 전통적 명문 첼시가 지난 2일 새 외국인 구단주를 맞이했기 때문이다.

영국 프로 스포츠계에서 외국인 구단주가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첼시의 새 구단주가 '베일 속의 억만장자', 러시아 올리가키(과두 재벌)의 대표주자 로만 아브라모비치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것이다.

올해 36세인 아브라모비치는 러시아 추코트카주의 주지사이자 세계 4위급 석유회사 시브네프티사의 회장이다. 그가 소유한 회사만도 알루미늄 회사에서부터 방송사에 이르기까지 50개가 넘는다.

전문가들은 그의 재산이 대략 57억달러(포브스지)에서 63억달러(선데이 타임스) 정도일 것으로 보고 있다.'포브스'는 2002년에 '유럽의 가장 부유한 인물 50명'에 그를 포함시켰다.

그는 지난 몇년 동안 국제 에너지계와 알루미늄 업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거물이었다. 또한 러시아 정치.경제를 관찰하는 크렘린 와처들에게선 '크렘린의 돈주머니'이자 러시아 정치의 장막 속의 지배자들인 올리가르흐 그룹의 신실세로 주목받아 왔다.

그가 더욱 화제를 모은 것은 이 모든 재산을 불과 10여년 사이에 형성했으며, 사회적 이력도 별볼일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도 대다수 러시아 올리가키처럼 연줄과 사유화 바람의 순풍을 타고 벼락부자가 되는 행운을 누린 것이다.

벼락부자가 된 올리가키들은 지난 10여년 동안 러시아 내 각종 기업을 인수.합병(M&A)해 몸집을 불렸다. 하지만 이들은 사업을 세계적 규모로 확대하기 위해선 벼락부자라는 이미지를 불식할 필요를 느꼈다.

그래서 선택한 것 중 하나가 구겐하임 미술관 등 명예로운 대상에 대한 거액 기부였다. 이 때문에 이들의 기부행위는 돈을 주고 명예를 사는 것이라는 비난이 일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세계적 예술단체와 기금들은 그들을 새로운 명예의 후원자로 받아들였다.

최근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증시엔 러시아 올리가키가 소유한 기업들의 주식이 상장되기 시작했다. 아브라모비치의 첼시 인수는 이미지 변신작업을 진행해온 올리가키들의 본격적인 해외기업 M&A의 신호일지도 모른다.

김석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