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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하는 중학생 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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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박혜민 기자 중앙일보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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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민
메트로G팀장

며칠 전 딸아이가 얼굴이 벌겋게 부어오른 채로 나타났다. 깜짝 놀라 왜 그러냐 물으니 자외선 차단제를 바꿔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그 며칠 전엔 예쁜 캐릭터가 그려진 쿠션 팩트를 썼다가 얼굴에 각질이 생겨 고생하더니 이번엔 자외선 차단제가 말썽인 모양이었다.

 개학 첫날이라고 잔뜩 멋을 낸 딸은 벌겋게 부어오른 얼굴에 울상을 하고 학교로 향했다.

 딸이 화장을 시작한 건 지난해 중학교에 입학한 후부터였다. 요즘 딸아이의 방 책상 위엔 책보다 화장품이 더 많다. 색색의 매니큐어와 립틴트는 물론이고 다양한 색상의 아이섀도까지, 엄마인 나보다 더 많은 화장품이 놓여 있는 것 같다.

 요즘 딸은 화장을 안 하고는 동네 편의점도 안 간다. 10대 때는 화장 안 한 얼굴이 훨씬 더 예쁘다고 해도 소용이 없다. 중학생이 무슨 화장이냐고 하면 “엄마, 요즘엔 화장 안 하는 애가 없다니까”라며 일축한다. 그러고 보니 지하철이나 버스, 학교 근처에서 만난 중학생 대부분이 얼굴 화장을 하고 있었다. 학교 교사들 역시 “너무 진하지만 않으면 된다”며 여학생들의 화장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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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청소년기 피부와 머리카락에 화장이나 염색이 좋을 리 없다. 하지만 그걸 막을 수는 없는 것 같다. 동네 선배 엄마들을 만나 고민을 말하면 “화장을 막을 수는 없으니 차라리 좋은 걸 사주는 게 현명한 일”이라는 한숨 섞인 답이 돌아오곤 한다.

 10대들의 피부는 연약하고 흡수율이 높아 화장품 성분을 잘 흡수한다. 피부에 유해한 성분까지 성인보다 잘 흡수한다. 특히 색조 화장품에 들어 있는 색소 성분은 피부에 더 나쁘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유일한 대처법은 클렌징을 잘하는 거다. 하지만 딸아이는 잠들기 전까지 화장을 지우지 않는다.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 내내 아주 심한 여드름을 달고 살았다. 하지만 화장품이나 여드름 치료제는 쓰지 않았다. 그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요즘처럼 스마트폰으로 다양한 화장품 정보나 관련 상식을 접할 수 있는 시절이 아니었다. 여드름은 스무 살이 넘자 말끔히 사라졌다. 얼굴에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최고라는 내 생각은 여전하다. 하지만 말린다고 들을 딸이 아니다.

 “엄마, 수분크림이랑 쿠션 팩트 좀 사다줘.”

 딸아이의 전화가 걸려온다. 며칠째 사다 달라는 화장품을 아직 안 사줬다. 일이 바쁘기도 했지만 10대는 어떤 화장품도 안 바르는 게 나은 거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말려도 바를 거라면 차라리 내가 안전한 화장품을 골라주는 게 나을 것 같다. 오늘은 10대 피부에 좋은 화장품이 뭔지 공부해서 그 화장품들을 사다 줘야겠다. 클렌징도 하게 하고 말이다.

박혜민 메트로G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