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 e판결] 사실혼 배우자가 몰래 한 혼인신고의 효력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사실혼 관계의 일방이 '몰래 한 혼인신고'는 효력이 있을까?

답은 ‘그때 그때 다르다’이다. 혼인신고 당시 상대방에게도 혼인 의사가 있다고 볼 수 있는지가 법원의 판단을 가르는 요인이다.

결혼정보업체의 소개로 만나 2011년 결혼식을 올렸던 A(45·남)씨와 B(39·여)씨. 두 사람의 결혼은 준비과정부터 평탄치 않았다. A씨는 신부를 맞기 위해 2억3000만원 짜리 전셋집을 마련하는 등 대부분의 금전적 부담을 졌지만 B씨는 “예단으로 500만원을 주면 얼마를 돌려주겠냐”고 묻거나 결혼식 날짜를 두 차례나 일방적으로 바꾸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했다.

우여곡절 끝에 결혼했지만 신혼여행 직후부터 B씨는 A씨의 술자리ㆍ밥자리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B씨는“누구랑 먹었느냐” 캐묻는 데 그치지 않고 식사를 함께 한 사람에게 밤늦게 전화를 걸어 사실여부를 확인했다. 심지어 몰래 전화 위치추적 서비스에 가입해 남편을 감시했다.

분을 참지 못한 A씨는 결혼 열흘 만에 부인에게 손을 댔다.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차기를 수 차례. 그해 12월에는 손가락 골절상까지 입혔다. 결국 1년이 채 안 돼 A씨는 집을 나갔고 얼마 후 “한 달 안에 짐을 정리하라”고 B씨에게 통보했다.

하지만 B씨는 오히려 전셋집을 처분해 자기 명의로 아파트를 사들이고 A씨 몰래 혼인신고를 했다. 이를 알게 된 A씨는 B씨를 고소했고, B씨는 사문서위조 등의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런 뒤 B씨는 서울가정법원에 혼인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1심에 이어 2심은 혼인이 무효임을 인정했다.

서울고법 가사1부(부장 김용석)는 B씨의 항소를 기각해 혼인이 무효임을 확인하고 전세금 2억3000만원을 A씨에게 돌려주라는 재산분할에 관한 1심의 판단도 그대로 받아들였다고 28일 밝혔다. 1심과 마찬가지로 '몰래 신고'에 따른 정신적 피해도 인정해 "A씨에게 10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다만 폭행과 폭언을 한 A씨도 "B씨에게 15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사실혼 관계의 일방이 단독으로 혼인신고를 한다고 해서 늘 혼인이 무효가 되는 건 아니다. 결혼관계는 혼인신고를 했을 때 법적으로 성립하지만, 혼인신고는 두 사람과 증인 2명의 서명이 있는 신고서만 있으면 혼자서도 할 수 있다. 남편이나 아내 중 한 사람이 홀로 혼인 신고를 하는 경우는 잦은 일이다.

사실혼 관계에 있던 일방이 한 나홀로 혼인신고의 효력을 법원은 쉽사리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실혼 관계에선 상대방의 혼인의사가 불분명해도 혼인의사가 추정되므로 상대방이 명백히 혼인의사를 철회했다거나 두 사람이 사실혼관계를 해소하기로 합의했다는 점이 입증되지 않으면 혼인을 무효라고 볼 수 없다”는 게 대법원 판례다.

A씨와 B씨의 경우는 A씨가 집을 나간 뒤 “한 달 안에 짐을 정리하라”고 통보한 행위가 ‘명백히 혼인의사를 철회한 경우’로 평가할 수 있기 때문에 혼인의 무효가 인정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 가사 전문 변호사는 “이미 사실혼 관계 자체가 파탄에 이른 데다 B씨의 혼인신고에 A씨의 재산을 가로채려는 의도가 뚜렷해 보이는 점 등도 재판부가 고려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장혁 기자·변호사 im.janghyu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