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지성] '동물에게도 문화가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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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에게도 문화가 있다/리 듀거킨 지음, 이한음 옮김/지호, 1만3천원

일본의 마카쿠 원숭이에 얽힌 이야기다. 오래 전 '이모'라는 마카쿠 원숭이는 사람들이 던져 준 고구마를 개울물에 씻어 먹어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리고 몇년 뒤 사람들이 모래 바닥에 밀을 던져 주자 이 원숭이는 더 큰 꾀를 부렸다. 모래가 섞인 밀을 물 속으로 던졌던 것이다.

그러자 모래는 가라앉고 밀만 물에 떴다. 그러고 나서 약간의 세월이 흐르자 그 지혜는 마카쿠 원숭이 사회에 쫙 퍼져나갔다. 아득히 먼 옛날, 인류의 조상이 삶의 지혜를 터득한 것도 이런 식이 아니었을까.

'인간이 다른 동물보다 우월한 이유는 모방 능력에 있다'고 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무색해진다.

미국 루이빌 대학 생물학 교수인 리 듀거킨이 쓴 '동물에게도 문화가 있다'(이한음 옮김.지호)는 제목만 보면 동물들의 독특한 행태를 이야기하는 책 같다.

그러나 내용은 '모방 인자(The Imitation Factor)'라는 영어 원서의 제목 그대로 모방이 인간을 포함한 동물의 진화에 미치는 영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작은 물고기들을 10여년 간 관찰한 저자는 뇌가 거의 없다시피한 물고기마저도 모방을 통해 문화를 전파하고 있고, 이런 모방은 동물의 진화에 유전인자 못지 않은 영향을 행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말하자면 유전자가 동물의 모든 특성을 결정한다는 유전자 결정론을 반박하고 있는 셈이다. 저자는 물고기의 짝짓기를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종족 보존을 위한 짝짓기에서만큼 유전자와 모방이 강하게 얽히는 시기가 따로 없기 때문이다.

아마존 강에 사는 아마존몰리와 세일핀몰리라는 물고기를 보자. 아마존몰리는 암컷뿐이다. 그리고 아마존몰리는 '자성발생'을 한다. 쉽게 말해 수정 후에 정자핵의 유전자는 배제되고 난핵만으로 발생이 진행되는 것이다.

그래서 아마존몰리에게는 난자를 자극할 다른 종의 수컷 정자가 필요하다. 세일핀몰리라는 물고기의 수컷이 아마존몰리를 위해 자신의 유전자를 낭비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런데 알고보니 세일핀몰리의 암컷은 다른 암컷과 짝짓기를 하는 세일핀몰리의 수컷에 매력을 느낀다. 이런 암컷의 취향도 다른 세일핀몰리의 암컷이 짝을 선택하는 모습을 모방한 것이라고 한다. 이렇듯 세일핀몰리의 모방은 아마존몰리라는 다른 종의 짝 선택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일본의 마카쿠 원숭이와 세일핀몰리라는 물고기의 예에서 보듯 단 하나의 개체가 무리 전체의 미래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그 이유에 대해 저자는 "모든 동물이 모방의 고수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동물 진화에 대한 이해 외에 인간중심적인 사고를 반성하게 하고, 우리의 모든 행위는 가정, 사회, 더 나아가 인류와 곧바로 연결된다는 인식을 갖게 하는 것이 이 책의 또다른 미덕이다.

정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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