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중의 썰로 푸는 사진] 동서양의 미인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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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미국 서부 협곡 여행을 했습니다. 점심을 먹기 위해 유타(Utah)주에 있는 프리웨이 휴게소에 들렀습니다. 휴게소 뒤에 있는 붉은 바위 절벽 중간쯤에서 신윤복의 미인도 형상을 봤습니다. 트레머리에 고개를 살짝 숙인 모습과 가느다란 목, 항아리 같은 치마의 실루엣이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와 닮았습니다.

200년 전 미인도의 복제품이 태평양을 건너 미국으로 간 걸까요. 너무 신기해서 몇 번을 다시 봤습니다. 그런데 오른 쪽에도 여인의 모습이 있습니다. 'F컵(?)'의 풍만한 가슴을 가진 서구형 미인입니다. 협곡 절벽은 동서양의 미인 그림이 전시된 갤러리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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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의 기준은 시대에 따라 다릅니다. 요즘이야 '쭉쭉빵빵'의 서구형 미인이 대세입니다. 8등신의 늘씬한 키에, 풍만한 엉덩이와 가슴이 소위 'S'라인을 이룹니다. 눈은 쌍꺼풀이 기본입니다. 코가 오똑하고 입도 커야 미인소리를 듣습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혜원의 미인도(비단에 채색, 113.9×45.6㎝, 간송미술관)를 볼까요. 키가 작아보입니다. 머리와 신체 비례가 5-6등신 정도 됩니다. 어깨가 가늘고 좁습니다. "장군은 목이 없고, 미인은 어깨가 없다"은 중국 '화론(畵論)이 딱 들어맞습니다.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가느다란 눈은 쌍꺼풀이 없습니다. 앵두같이 작은 입술이 앙증맞습니다. 전통적인 미인답게 눈썹은 초승달 같고, 얼굴은 약간 통통한 계란형입니다. 목 뒤에 난 솜털과 목에서 어깨로 내려오는 선이 고혹적입니다.

주기중 기자·click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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