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못해요 하던 아이들 눈빛이 살아났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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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을 준비하면서 탈북 청소년들은 닫힌 마음을 조금씩 열었고 삶의 목표도 생겼다.
[사진 통일을실천하는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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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다른 적이 없어요. 잊지 말아요~”

탈북 청소년 뮤지컬 기획 이동훈씨

  지난 20일 오후, 서울 영등포의 한 백화점 문화홀. 300여 명의 관객이 지켜보는 가운데 창작 뮤지컬 ‘꿈’에 출연한 청소년 28명이 손을 꼭 잡고 공연 마지막곡인 ‘One Dream One Korea(하나의 꿈 하나의 코리아)’를 합창했다. 출연진의 얼굴은 붉게 상기됐고 관객 일부도 눈물을 흘렸다.

 출연진은 모두 탈북 청소년을 위한 대안학교인 겨레얼학교 학생들이다. 두 달 전만 해도 ‘뮤지컬’ 자체를 몰랐던 이들을 뮤지컬 무대로 이끈 사람은 시민단체 ‘통일을실천하는사람들(상임대표 서인택)’의 이동훈(38·사진) 서울본부 기획국장이다. 그는 2012년부터 스포츠·예술 문화 활동을 통한 통일 운동을 하고 있다.

 이 국장이 겨레얼학교 아이들을 알게된 건 지난해 11월 열린 ‘한반도 탁구 대축제’에서다. 그는 “자기들끼리는 서로 잘 웃고 활동적인 겨레얼학교 아이들에게서 ‘뮤지컬 배우’의 끼를 봤다”고 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낯선이에겐 거부감이 컸다. 이 국장은 “아이들에게 무언가 하자고 제안하면 언제나 ‘안돼요’‘못해요’라는 반응이 나왔다”며 “목표도 없고 모든 일에 부정적인 모습들이었다”고 했다.

 그는 아이들을 돕고 싶은 맘에 우선 겨레얼학교 학예회 도우미를 자청했다. 학예회 2주 전부터 매일 학교 기숙사를 찾아 노래와 춤 등을 가르쳐줬다. 이화여대 댄스동아리 ‘하이라이트’ 학생들도 자원봉사로 합세했다.

처음엔 꺼리던 아이들도 아이돌 그룹 엑소(EXO)의 노래에 맞춰 함께 춤추고 어울리다 보니 차츰 달라졌다. 덕분에 학예회에서 매끄러운 군무와 합창을 선보일 수 있었고 내친 김에 뮤지컬 공연까지 하게 됐다.

 뮤지컬 시나리오는 재미교포 감독인 캐롤라인 권이 썼다. 제목은 ‘꿈’. 아픈 엄마를 위해 중국에서 행상을 하던 탈북 청소년 영희가 한국인 선생님을 만나 예술학교에서 꿈을 찾는 내용이다.

이 국장은 “어렵게 탈출해서 찾아간 중국에서도 당당하게 살지 못하고 숨어 사는 주인공 영희의 이야기는 탈북 청소년들의 경험과 비슷할 것”이라고 했다. 실제 영희 역을 맡은 장옥흠(16)양은 “저랑 영희가 비슷해요”라고 고백했다고 한다.

 이 국장은 “뮤지컬을 시작한 뒤로 아이들에게 목표가 생겼고, 눈빛도 살아났다”고 전했다. 그는 뮤지컬 준비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3월에 열리는 ‘부산평화영화제’에 출품할 계획이다.

글=이은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lee.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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