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안보 위중한데, 본회의장 지킨 의원 30여명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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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첫 국회 대정부 질문이 열린 18일 오후 국무위원들이 자리를 지키며 기다리고 있는 가운데 국회 본회의장의 의원들 자리가 대부분 비었다. [사진 조문규 기자]

“오후 2시 시작 아니에요? 국회의원들이 국회에 안 왔네요…. 한심해요.”

대정부질문 정족수 못 채워 지연
참석자도 “지역구 행사 아른거려”
방청석 고교생 “국회가 한심해요”

 18일 오후 2시20분. 국회 본회의장 4층 방청석을 찾은 강릉고 3학년 김한재군의 불만이었다. 이날 오후 속개 예정이었던 외교·안보 분야 대정부 질문은 지연되고 있었다. 재적 인원(293명) 5분의 1 이상(59명)인 개의(開議)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서였다. 본회의장엔 40여 명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앞서 정회에 들어간 이날 오후 12시16분 본회의장엔 새누리당 16명과 더불어민주당 18명이 앉아 있었다. 전체 의원의 12%, 참석한 국무위원(14명) 숫자의 두 배 정도에 불과했다. 국민의당 의원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다른 날도 아니라 이날은 개성공단 전면 중단 조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한반도 배치 등 굵직한 안보 이슈에 대해 논해야 하는 날이었다.

 그런데도 의원이 없어 회의를 시작하지 못했다. 회의는 오후 2시25분, 59명을 겨우 넘겨 속개됐다. 여야는 텅 빈 본회의장에서 고함과 맞고함을 주고받았다.

더민주 최민희 의원이 “북한의 핵 개발은 단호히 반대한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방송 장악 여론몰이 독재로 국정 파탄이 은폐되고 있다. 최소한 전쟁 조장은 안 된다”고 하자 새누리당 이노근 의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아니 저렇게 굴종적인 친북 발언을 듣고 있으란 말이에요?”라고 소리를 질렀다.

이에 더민주 설훈 의원이 “무슨 친북이야, 친북은!”이라며 맞섰다. 오전엔 더민주 김광진 의원이 황교안 국무총리에게 “(핵·미사일 개발 자금이 흘러갔다는) 39호실은 2012년도에 유엔 제재로 폐지된 조직”이라며 “없어진 조직을 가지고 근거가 있는 얘기인 것처럼 호도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새누리당 조원진 의원이 “39호실은 노무현 정부 때도 공문으로 나와 있어요!”라고 소리쳤다. 이에 더민주 김현 의원이 “지금은 없다잖아요!”라고 끼어들었다.

 본회의장에 있는 의원들의 관심은 딴 데 쏠려 있었다. 더민주 전략공천위원장인 김성곤 의원은 20대 총선 지역구 후보자 공모 현황 자료를 들고서 총무본부장 출신 최재성 의원과 20분간 머리를 맞대고 상의했다.

같은 당 양승조 의원은 기자에게 “눈앞에 오늘 참석 못한 지역구 행사 열 몇 개가 아른거렸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오늘은 자리를 지키는 게 도리일 것 같아 나왔다”고 했다.

 이날 홍용표 통일부 장관은 “개성공단으로 들어간 자금의 70%가 노동당으로 상납되고 그것은 핵 개발에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한다. (자료 입수) 경로까지 밝힐 수는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는 동안 본회의장을 지키는 의원들은 30여 명 정도였다.

고등학생 김한재군에게 국회가 한심해 보였다면, 홍 장관에겐 어떻게 보였을까. 질의를 마치고 나가는 홍 장관에게 “오늘 의원들이 많이 안 왔더라”고 하자 그는 웃었다. 웃으면서 홍 장관은 국회 ‘빈 좌석’을 떠올렸을지 모른다. 그 빈 좌석만큼 안보가 국회에서 외면당했다.

글=위문희 기자 moonbright@joongang.co.kr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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