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세에 중학교 졸업 “인수분해 하니 자녀들이 놀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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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베트남 이주 여성 원미경(26)씨는 10년 만에 중학교를 졸업한다. 13일 서울아현중학교 부설 방송통신중학교에서다.

6개 방송중학교 첫 졸업식 열려
졸업생 201명 중 145명 만학도

베트남 호찌민에 살 땐 집안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를 그만둬야 했다. 원씨는 “2010년 한국으로 시집온 다음 방송중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중학교 공부를 다시 했다”고 말했다.

매일 오전엔 무역회사에서 사무직으로 일하고, 퇴근 후엔 집에서 두 아들을 돌보면서도 밤 11시부터 두 시간 동안 진행되는 인터넷 강의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한글 읽기와 쓰기가 서툴러 수업에서 들은 내용을 노트에 적어 오면 남편이 노트 내용을 다시 쉽게 설명해 줬다”며 “고졸 검정고시를 거쳐 내년엔 꼭 대학에 입학해 무역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말했다.

 원씨와 같은 방송중학생 201명이 13~14일 6개 학교에서 졸업한다. 방송중이란 중학교 학력을 취득하지 못한 성인과 학업중단 청소년 등에게 중졸 학력 취득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설립된 공립중학교다. 현재 전국에서 12개가 운영 중이며, 2074명이 재학하고 있는데 2013년 문을 연 뒤 이번에 첫 번째 졸업생이 나왔다.

이번 졸업생 중 145명(72%)은 배움의 기회를 놓쳤던 50~70대 만학도다. 최고령 졸업생은 광주북성중 부설 방송중을 졸업하는 이모(80)씨. 초등학교 5학년 때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학교를 그만뒀다. 집안 형편이 넉넉지 못해 친구들이 중학교에 진학할 때 지게를 지고 나무를 했다고 한다.

이씨는 “생활비를 대려고 만년필·수첩 등 팔아보지 않은 게 없다”고 말했다. 그는 신용협동조합에서 정년퇴직을 한 뒤 64세 때 초등학교 검정고시 시험을 보고 2013년 방송중에 입학했다. 이씨는 “학교에서 배운 인수분해 공식으로 수학 문제를 풀자 자녀들이 깜짝 놀라더라. 나와 비슷한 처지의 만학도가 많아 매주 학교 가는 것이 기다려졌다”고 했다.

 방송중에 입학하려면 만 15세 이상자로서 초등학교를 졸업했거나 중학교 입학자격 검정고시에 합격해야 한다. 학생들이 일과 학업을 병행할 수 있도록 수업의 80%는 온라인 강의, 20%는 소속 학교 출석(격주 주말 중 하루 오전 9시~오후 3시)으로 진행된다.

윤재영·김준영 기자 yun.jae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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