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에 크레파스 색칠해놓고 “보험금 달라”…보험사기 백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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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얼마 전 황당한 일을 겪었다. 자동차로 퇴근하는데 갑자기 옆 차선에 있던 차가 A씨 바로 앞 차량 앞쪽으로 끼어들었다. 앞 차량은 급브레이크를 밟으면서 멈춰섰고, 미처 대비를 못한 A씨는 그대로 앞 차를 들이받았다.

보험회사를 통해 사고 처리한 결과 A씨의 책임으로 판정돼 수리비와 병원비는 물론 합의금까지 물어야 했다. 앞차와의 안전거리를 확보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몇 달 뒤 이 사건은 보험사기로 밝혀졌다. 두 차량이 짜고 추돌사고를 유발하는 이른바 ‘칼치기(급차선 변경)’였다.

금감원은 2일 “일반인을 상대로 한 고의사고나 일반인을 끌어들여 보험금을 빼돌리는 보험사기가 늘고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금감원과 수사당국의 공동 조사 결과 지난해 총 976명의 보험사기범이 적발됐다.

칼치기가 대표적이다. 금융당국이나 보험사가 보험사기 의심을 못하도록 구인사이트에서 ‘고액 일당 아르바이트’라며 취업준비생 등을 동승자로 끌어들이는 수법을 쓴다. 범행 대상은 1억원이 넘는 고가의 수입차로, 차량통행이 별로 없는 심야시간에 자동차 전용도로에서 사고를 낸다. 지난해 30건의 칼치기가 적발돼 사기범 84명이 처벌을 받았다. 이들이 빼돌린 보험금만 5억1000만원이다.

무료 세차를 미끼로 고객에게 접근해 보험사기 가담을 유도하기도 한다. 세차장에 온 고객에게 “크레파스로 색칠만 해서 보험사에 사진을 보내면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고 제안한 뒤 보험금을 빼돌려 나눠 갖는 수법이다. 지난해 총 545건의 수리비 허위청구로 5억3000만원을 빼돌렸다. 보험사기범 5명과 사기에 동조한 세차고객 134명을 포함한 139명이 검찰에 송치됐다.

정비업체가 사고 차량 운전자에게 “사고부위를 조금만 넓히면 보험금을 더 받을 수 있다”고 제안하기도 한다. 고객이 수락하면 벽돌 등으로 차에 흠집을 내 보험금을 더 받아낸다. 지난해 275건의 수리비 허위청구로 정비업체 대표 8명이 검찰에 송치됐다. 금감원 관계자는 “미심쩍은 사고를 당하거나 보험사기 제안을 받으면 바로 금감원이나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uni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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