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가족] 암세포 정밀 타격하는 표적항암제, 폐암 환자의 한 줄기 빛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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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위 위원장

국내 암환자의 5년 생존율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걸린 것 자체가 사망선고와도 같았던 4기 폐암 환자의 5년 상대생존율이 10여 년 전의 2배(23.5%)로 높아졌다. 암환자에게 5년 생존율은 암의 극복 가능성을 보여주는 지표다. 암이 ‘관리 가능한 질환’으로 바뀌고 있다는 얘기다.

[특별 기고] 대한항암요법연구회 김상위 폐암분과위원장(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교수)

암 치료 패러다임을 바꾸는 데는 표적항암제가 주도적 역할을 했다. 표적항암제 개발이 가장 활발히 진행된 분야는 폐암이다. 표적항암제 등장 이후 4기 폐암 환자의 생존기간은 기존보다 1년 이상 연장됐다.

폐암 중 특정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겨 발생하는 폐암이 있다. 역형성 림프종키나제(ALK) 양성 비소세포폐암은 ALK 유전자 돌연변이로 발생한다. 전체 비소세포폐암 환자의 2~7%에 불과한 희귀암이다. 흡연 경험이 없는 젊은 여성에게서 발병률이 높다.

표적항암제는 ALK와 같이 유전자 변이가 일어난 특정 세포만 골라 공격한다. 정상 세포는 거의 건드리지 않고 암세포를 타깃으로 치료하기 때문에 치료 효과가 뛰어나고 부작용이 적다. 표적항암제는 암환자의 생존뿐 아니라 삶의 질을 중요한 화두로 등장시켰다.

4기 폐암 환자 5년 생존율
최근 10년 새 두 배로
항암 치료제 건보 지원 필요

하지만 표적항암제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환자에게 내성이 생긴다. 암이 다른 부위로 전이돼 기존 치료제로 손쓸 수 없는 상황이 되기도 한다. 표적항암제는 내성을 포함해 앞서 개발된 치료제가 안고 있는 도전 과제를 해결하며 진화한다. ALK 양성 비소세포폐암 치료제는 1세대 표적항암제와 지난해 출시된 2세대(세리티닙) 표적항암제가 있다.

1세대의 경우 투여 후 1년 정도 지나면 대부분의 환자에게서 내성이 발생해 암이 진행된다. 2세대 표적항암제는 1세대 치료를 하다 내성을 보이거나 치료 이후에도 암이 진행된 ALK 양성 비소세포폐암 환자를 위한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기존에 ALK 표적항암제를 쓰지 않은 환자의 ‘무진행(암세포 성장이 없는 상태)’ 생존기간을 상당기간 늘렸고, 뇌전이 환자의 종양 크기를 감소시켰다. 이제 환자의 치료 경과에 따라 기존 치료제의 내성 문제와 전이 등을 잘 살피면서 적절한 치료제를 제때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표적항암제 개발과 함께 폐암은 극복 가능한 만성질환으로 인식이 바뀌고 있다. 기존 치료제의 한계를 뛰어넘는 2, 3세대 표적항암제의 진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환자가 필요로 하는 시기에 효과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새로운 치료제에 대해 신속히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 의료시스템과 의료비용을 강력하게 규제하는 영국도 2009년 말기암 환자 치료 기준(End of life therapy guidance)을 제정해 ‘드문 암종으로 기대여명이 2년이 되지 않으며, 기존 치료에 비해 3개월 이상의 생존기간을 연장하는 항암제’에 대해 국가가 비용을 지불하도록 했다.

구슬이 많아도 꿰어야 보배다. 사회적으로 암환자의 생존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노력해야 할 때다.

대한항암요법연구회 김상위 폐암분과위원장(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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