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좌초설은 근거 없다” 결론낸 241쪽 판결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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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26일 군 장병 46명의 희생을 가져온 ‘천안함 침몰’은 북한의 어뢰 공격 때문이었다는 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사건이 발생한 지 5년10개월 만이다.

좌초 주장 신상철씨 명예훼손 소송
57명 증인 신문, 현장검증만 2차례
“천안함 북한 어뢰 공격 받고 침몰”
신씨 “정부 고의로 구조 지연” 주장
법원, 유죄 인정 … 징역 8월 집유 선고
신씨 “의견 변함없다, 항소할 것”

천안함 ‘좌초설’을 제기한 신상철(58·전 민군합동조사단 민간위원) 서프라이즈 대표의 명예훼손 혐의 사건에 대한 1심 선고에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6부(부장 이흥권)는 이날 신씨가 제기한 천안함 좌초설은 근거가 없고 천안함은 북한의 어뢰 공격 때문에 침몰했다고 결론 내렸다.

 신씨는 2010년 4~6월 “천안함은 과실로 모래톱에 좌초했다가 후진해 빠져나와 항해 중 미 군함 등과의 충돌로 침몰했다”는 취지의 글을 자신이 운영하는 서프라이즈 인터넷 게시판 등에 올렸고 이 같은 내용으로 외부 강연이나 언론 인터뷰를 했다.

신씨는 천안함 좌초설과 함께 “정부가 천안함 침몰의 진실이 밝혀지는 것을 원치 않아 고의로 구조를 지연하고 당시 김태영 국방부 장관이 증거를 인멸했다”는 주장도 했다. 2010년 4월 4일자 및 6월 11일자 등 2건의 글을 통해서였다.

 이런 주장들은 같은 해 5월 민군 합조단이 “천안함은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침몰했다”고 발표한 것과 전면 배치됐다.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 민간위원이던 신씨의 이 같은 주장은 큰 파장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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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에 당시 김태영 장관과 김성찬 해군참모총장 등이 신씨를 고소·고발하자 검찰은 수사를 거쳐 34건의 허위 사실을 적시해 군과 합조단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같은 해 8월 신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신씨는 천안함 좌초설의 근거로 ▶폭발 시 발생하는 물기둥을 목격한 사람이 없고 ▶당시 군 관계자가 처음에 ‘좌초’를 언급했다는 점을 들었다. 또 ▶어뢰 추진체에서 발견된 흡착물질은 폭발물로 보기 어렵고 ▶어뢰 추진체의 ‘1번’ 표기가 녹지 않은 것은 뒤늦게 표기됐을 가능성을 보여준다고도 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천안함은 수중 폭발에 의해 침몰했고 사용된 무기는 북한에서 제조한 어뢰로 판단된다”고 못 박았다.

신씨의 주장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재판부는 “천안함 침몰 시 섬광과 함께 물기둥이 있었지만 목격되지 않았을 수도 있고 해군이나 승조원 중에 ‘좌초’를 언급한 사람이 없다”고 밝혔다.

 또 어뢰 추진체의 흡착물질에서 폭발 시 생기는 흑연이 검출됐다고 했다. 특히 “어뢰 추진체에 페인트나 잉크로 적힌 ‘1번’ 표기는 폭발에 녹지 않을 수 있다. 신씨의 주장대로 녹슨 금속 표면 위에 뒤늦게 표기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어뢰의 추진제로 볼 때 북한이 제조하는 CHT-02D 어뢰 또는 같은 계열의 어뢰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신씨가 작성한 정부의 고의 구조 지연 및 국방부 장관의 증거인멸 관련 2건의 글은 명예훼손이 명백하다고 보고 신씨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그 허위성을 미필적으로 인식하면서도 자극적이고 경멸적인 표현을 사용했고 그 내용이 매우 충격적이어서 공직자 개인을 악의적으로 비방할 목적이 있었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다만 천안함 좌초설 제기 글 등 32건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천안함 침몰 원인을 밝히는 것은 공익과 관련된 사항으로서 비판과 논쟁이 허용돼야 하고 이는 표현의 자유로 보호돼야 하는 영역”이라고 판단해서다.

 재판부는 신씨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과 관련해 “지나친 과욕과 반대되는 정파 및 군에 대한 막연한 반감이 부른 경솔한 행동으로 보이지만 의혹이 거짓으로 밝혀졌으므로 국민들이 현혹되는 사태는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참작했다”고 설명했다.

 신씨는 법원의 선고 후 “(좌초설) 의견에는 변함이 없다. 나는 이 분야 전문가이고 오랫동안 이 일을 해왔다. 항소하겠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5년6개월의 심리 기간 동안 57명의 증인을 신문하고 두 차례에 걸쳐 인양된 천안함 선체와 추진체 관련 군사기밀 사항 등을 검증했다. 이 기간 동안 재판장 6명과 재판을 담당하는 검사 5명이 바뀌었다. 이날 법원의 판결문은 241쪽에 달했다.

서복현·정혁준 기자 sphjtb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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