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시장 개방 압박수위 높이는 4개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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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국내 법률시장 3차 개방의 핵심인 한국 정부의 외국법자문사법 개정안에 대해 미국·영국·호주·유럽연합(EU) 등 4개국 외교 사절들이 국회 항의 서한 전달과 법무부 당국자 면담을 추진하는 등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

외국법자문사법 개정안에 반발
미국 측 “오늘 국회에 항의 서한”

특히 미국 측은 이 같은 대응이 미국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며 향후 개정안 문제를 한국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가입 추진 움직임과 연계할 가능성도 내비쳐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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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한 미국 대사관의 핵심 관계자는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 주한미대사관에서 본지 기자와 만나 “이번 개정안은 법률시장을 개방하는 조치가 아니라 시장을 제약하는 조치가 될 수 있다”며 “18일 이상민 국회 법사위원장에게 이런 우려를 담은 서한을 공식적으로 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한에는 한국과 외국 로펌의 합작법인 설립 시 ▶외국 로펌 지분율 49%로 제한 ▶업무 경력 3년 이상의 자격 제한 ▶국내 법률 업무 제한 등의 조항 신설에 대한 반대 입장이 담긴다. 마크 리퍼트 미국 대사와 찰스 헤이 영국 대사, 게하르트 사바틸 EU 유럽위원회 대표부 대사, 라비 케워람 호주 대사대리가 이미 서명한 서한은 외국법자문법률사무소협회의 서한과 같이 전달된다.

 또 이번 주 중 4개국 대사관 실무자들과 김호철 법무부 법무실장 간 면담도 추진된다. 주한 미 대사관 관계자는 “지난달 리퍼트 대사 등 2개국 대사가 김현웅 법무부 장관과의 면담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이에 따라 실무자급 면담을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한국의 TPP 가입에 반대할 이유를 주지 않기 위해 조심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언급해 법률시장 개방이 한국의 TPP 가입에 영향을 줄 수 있음을 시사했다.

TPP는 아시아·태평양 지역국 간의 광역 자유무역협정이다. 미국과 일본 등 12개국을 회원국으로 지난해 10월 타결됐다. 한국은 TPP 가입 의사를 밝힌 상태다.

 그러나 법무부는 개정안 내용이 FTA 협정문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입장이라서 양측 간 갈등이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 관계자는 “FTA 협정문에 한국이 합작법인의 제한 조건을 둘 수 있도록 돼 있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합작법인이 외국 로펌의 자회사처럼 운영되는 것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제한 조건이 꼭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서울지방변호사회도 17일 “국회의 정당한 입법권 행사에 항의하는 외교사절들의 행동은 대한민국 주권을 침해하는 행위로 명백한 내정간섭”이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8월 한·EU와 한·미 FTA 협정에 따라 법무부가 마련한 ‘외국법자문사법 개정안’은 지난 7일 국회 법사위 소위를 통과해 8일 전체회의-본회의에 상정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리퍼트 대사 등이 이상민 법사위원장을 만나 강력 항의하면서 상정이 미뤄졌다.

서복현 기자 sphjtb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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