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살인 피해자 어머니, 통한의 진술 "꼭 범인을 밝혀주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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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살인사건’ 11차 공판이 열린 14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417호 법정.

형사27부 심규홍 부장판사의 심리로 진행된 아더 존 패터슨(37)의 재판에는 패터슨과 에드워드 건 리(37), 피해자 고(故) 조중필씨의 어머니 이복수(74)씨 세 사람이 함께 자리했다.

패터슨은 조중필씨 살인 사건의 피고인으로, 18년 전 재판에서 진범으로 지목됐다가 무죄로 풀려난 에드워드는 검찰 측 증인으로, 어머니는 피해자 대표로서였다.

에드워드는 이날 계획에 없던 증인이었다. 검찰이 “에드워드의 과거 검찰 조서가 증거로 채택되기 위해서는 당사자에게 조서를 확인하고 열람하게 하는 절차가 필요하다”며 에드워드의 아버지를 설득해 증인 신문이 이뤄졌다.

에드워드는 “과거 조서에는 그렇게 적혀 있으나 그 당시 일들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는 답변으로 일관했다. 조서 검증은 오후까지 이어졌고 패터슨 측은 “패터슨은 범인이 아니다”고 재차 주장했다. 검찰 측과 지리한 공방이 이어졌다.

공방이 끝난 오후 5시, 심 부장판사가 객석을 바라보며 “피해자 어머니 나오셨느냐”고 물었다. 재판장은 “피해자 진술 확보 차원에서 피해자 측 변호사와 조씨의 어머니에게 진술 시간을 드리겠다”고 했다.

어머니 이씨가 객석에서 힘겹게 일어났다. 이씨는 법대 앞의 증인석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한 걸음씩 천천히 뗐다. 떨리는 손에는 미리 써온 진술서가 들려 있었다.

이씨는 지난 12일부터 3일 연속 진행된 공판에 빠짐없이 참석해왔다. 매번 뒷자석에서 표정 변화 없이 두 손을 맞잡은 채 재판을 지켜보곤 했다.

앞으로 나온 이씨에게 심 부장판사가 “피고인 앞에서 괜찮겠느냐”고 묻자 이씨는 “해야죠. 자식을 위해서는 뭐든지 해야죠”라고 말하며 증인석에 앉았다. 이씨는 숨을 한번 크게 들이키고 준비해 온 진술서를 읽어 내려갔다.

우리 가족은 화목하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3대가 모여 재미있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1997년 4월 3일 ‘그 사건’ 이후로 행복은 끝이 났습니다. 교통사고로 아들을 잃어도 마음이 아픈데, 나쁜 놈들이 아홉 군데나 잔인하게 찔렀습니다. 아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요. 제 마음은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집니다.

며칠 법정에 나와 사건 기록들을 다시 보니 더욱 기가 막힙니다. 17살이나 먹은 사람들이 재미로 사람을 죽였습니다. 저는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그들은 우리 중필이만 죽인것이 아닙니다. 우리 가족 모두를 죽인 것입니다. 자식 죽은 부모는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두 놈 다 같이 죽이고 싶습니다. 그래야 응어리가 풀릴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사법은 한 사람은 특별사면(패터슨)으로, 한 사람은 무죄(에드워드)로 풀어줬습니다. 우리나라 법이 이런 법입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법은 없습니다.

앞으로 74일이 지나면 우리 아들이 죽은지 만 19년이 됩니다. 22년 동안 욕도 한번 안 하고 상장,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에 다닌 우리 착한 중필이…. 어미로서 너무 안타깝고 억울합니다.

지금도 재판정에 나올 때 마다 온 몸이 떨립니다. ‘과연 이번에는 벌을 얼마나 받을까.' 두 사람이 풀려난 이후로 우리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면 어디든 가서 서명을 받았습니다. 18년 동안 거리에서 보낸 시간이 얼마나 많은지, 애초에 재판이 잘 됐으면 검사가 좀 더 꼼꼼히 조사했더라면…. 피해자 가족이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합니까.

꼭 범인을 잡아 구속시켜 주세요. 새로 수사하는 마음으로 조사해서 꼭 범인을 밝혀주세요.”

이씨는 중간 중간 한숨을 내쉬며 말을 끊었지만 끝내 울음을 참았다. 진술을 마친 이씨는 재판장과 검사 등에게 허리 숙여 세 번 인사했다. 그는 법정을 나와서야 간이 의자에 쓰러지듯 몸을 기댔다.

정혁준 기자 jeong.hyuk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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