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본때'에 勞 꼬리내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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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노조가 파업 돌입 78시간 만에 물러설 조짐이다.

노동계 주변에서는 '의외'라는 평이 나오고 있다. '친노동'의 이미지가 강하던 정부의 초기 강경대응도 의외였고 파업 철회 쪽으로 기울고 있는 노조 내부의 기류변화도 예상 외였다.

당초 노조 지도부와 민주노총은 공권력 투입에 강력 반발하며 파업을 이끌려 했다. 그러나 비판 여론이 확산되고 정부의 강경대응의 수위가 높아지면서 수세에 몰리게 된 것이다.

특히 노조 각 지부에서 업무 복귀 의사를 잇따라 표시한 것이 파업의 동력을 약화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하부 조직의 뒷받침이 부진해지자 파업을 계속 끌고가려던 지도부도 견디기 어렵게 된 것이다. 목소리를 낮추고 있던 온건파가 파업 후 자기 주장을 많이 냈다는 것이 정부 측의 정보분석이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노조 지도부는 막판에 정부 측에 징계를 거둬들일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고 한 정부 관계자는 전했다. 후퇴의 명분을 얻어내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이에 대해서도 강경하게 대응할 방침이다. 징계 철회가 협상의 전제 조건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은 "노조가 정부에 파업 철회 조건을 제시한 것은 없으며 정부도 노조와 협상을 벌인 것은 없다"고 밝혔다. 다만 文수석은 "노조가 파업을 철회하면서 공사화 방침 외에 부수적 문제에 대해 대화를 요구한다든지 선처를 호소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가 말한 '선처'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공무원 연금 혜택의 보장이다. 공사화로 인해 공무원 신분을 벗어날 경우 그때까지 부어온 공무원연금에서 탈퇴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최고 1억원의 손실을 볼 수도 있다고 한다.

정부는 이에 대해 아직 분명한 회답을 주지 않고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8월까지 적절한 대책을 마련할 것이지만 현재로선 정부가 노조의 조건을 받아들여 업무 복귀를 수용할 입장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부의 이런 태도를 고수한 상태에서 시간이 흐르자 노조 쪽의 패색이 짙어진 것이다.

여기에는 파업에 대한 비난 여론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노조가 파업의 최대 명분으로 내걸었던 철도구조개혁 관련법안이 30일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협상 이슈가 사라진 것도 노조에는 큰 부담이 됐다.

청와대는 이 기회에 엄단해야 할 몇가지 원칙을 분명히 해두려는 모습이다. ▶경제에의 악영향▶국민 불편 초래▶기존 합의의 번복▶공무원 신분의 불법 파업 등에는 '배려'가 없을 것임을 文수석은 강조했다.

이와 함께 노무현 대통령이 처음으로 '노조 지도부'를 지칭해 강도 높게 비판한 대목은 눈여겨 볼 대목이다. 청와대의 한 노사 문제 관계자는 "盧대통령은 1990년대 노동변호사로 현장에서 중재를 하면서 일부 대기업 귀족 노조의 도덕성에 상당히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됐다"고 전했다. 그는 또 "순수한 노조원의 이해를 담보로 노동운동을 벼랑 끝으로 몰아가는 노조 지도부는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정부의 이 같은 방향 전환은 앞으로의 '하투(夏鬪)'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일단 정부는 명분에서 노동계를 압박할 자신을 보이고 있다. 특히 최근 노동운동이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는 것도 정부의 강경대응에 힘을 실어줄 전망이다. 여기에다 힘으로 자기 주장을 관철하려는 집단행동에 정부가 '힘'으로 대응한 것도 향후 파업 대응에 선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장정훈.김성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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