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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없어질 직업에 투자하는 당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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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안혜리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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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혜리 뉴디지털실장

요즘 취준생(취업준비생)의 화두는 공무원이다. 통계청 조사 결과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지난해 청년층(15~29세) 취업시험 준비자 가운데 34.9%가 일반직 공무원 시험 준비자였다. 이미 존재하는 직업은 물론 앞으로 생겨날 그 많고 많은 직업 가운데서 공무원을 하겠다고 준비하는 사람이 무려 열에 서넛이나 된다는 얘기다.

 젊은층의 공무원 선호가 아주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취업난으로 원하는 일자리는 잘 보이지 않는데 시험 한 번으로 평생 안정성이 보장되는 직장이라는 생각에 공무원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다.

 이런 세태가 한편으로 안쓰럽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매우 걱정스럽기도 하다. 우리 사회가 미래를 내다보고 준비하기보다 과거에만 발목이 잡혀 있는 것 같아서 말이다. 저커버그는 대학 시절 만든 페이스북 하나로 세상 사람들의 성향과 디지털 인맥까지 손바닥 들여다보듯 하고, 중국은 유인 드론을 내놓는 세상이다. 그런데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안정된 삶을 살겠다며 과거에 좋았던 직업인 공무원을 아직도 꿈꾸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 들어선 지 이미 꽤 지났다. 많은 전문가가 현재의 직업 대다수가 멀지 않은 미래에 사라질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을 내놓는다. 심지어 요리사나 기자 같은 어느 정도 전문성이 필요한 일도 로봇이나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것이란 비관적인 관측이 많다. 아무 전문성 없는 사무직이야 말할 것도 없다.

이 와중에 정보기술(IT) 분야의 빅데이터 분석가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개발자 등은 여전히, 아니 점점 더 필요한 직업군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이 분야의 구인난은 점점 심해지고 있다. 이미 10여 년 전쯤에도 달라진 세상에 준비해야 한다는 경고음이 요란했지만 다들 당장 눈앞의 스펙·학벌·돈·명성만 좇았다. 그런데 아직도 공무원에 목을 맨다. 미래를 보지 않는다.

 영국 프리미어리그(EPL) 아스널의 아르센 벵거 감독은 앙숙인 조세 모리뉴 전 첼시 감독에게 한때 “실패 전문가(specialist in failure)”라고 조롱당했다. 하지만 모리뉴가 성적 부진으로 첼시 감독직을 떠난 지금도 벵거는 꾸준한 성과를 끌어내며 명장 반열에 올랐다. 그는 그 비결의 하나로 “나는 언제나 미래에 산다”고 말한 적이 있다. 눈앞의 단기 목표에 집착하기보다 미래에 투자한다는 얘기일 것이다. 과연 우리는 어디쯤에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안혜리 뉴디지털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