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리셉션에서 공개 비판받고, 다시 심야에 초치당한 지재룡 대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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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4차 핵실험을 감행한 당일인 6일 저녁, 지재룡 주중 북한 대사가 중국 정부가 운영하는 영빈관 격인 댜오위타이(釣魚臺)에 모습을 나타냈다. 단정한 정장에 부부동반이었다. 중국 외교부가 베이징에 주재하는 각국 대사들을 초청해 베푼 신년 초대회(리셉션) 행사에 나타난 것이다.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양제츠(楊潔?) 국무위원(외교담당)과 왕이(王毅)외교부장 등 중국 측 인사와 각국 대사 등 350여 명이 이 리셉션에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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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저녁 베이징에서 열린 각국 대사들 초청 리셉션에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례적인 장면도 연출됐다. 왕이 부장이 인사말에서 북한의 핵실험을 직접 거론한 것이다.
왕 부장은 "중국은 국제 핵 비확산체제의 유지를 굳건하게 지지하고 있다. 오늘 조선(북한)이 국제사회의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또다시 핵실험을 실시한 데 대해, 중국정부는 이미 외교부 성명을 통해 엄정한 입장을 표명했다"라고 밝혔다. 통상 덕담으로 가득 채워지기 마련인 리셉션 인사말에 특정 국가를, 그것도 당사자인 북한 대사가 참석한 면전에서 비판 발언을 한 건 매우 이례적이다. "막판에 연설 원고에 북한 핵 실험 관련 부분을 추가해 넣은 것"이라고 관계자가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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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모란봉악단을 이끌고 베이징을 방문한 현송월과 함께 한 지재룡 주중 북한 대사.

또 다른 외교소식통은 "중국이 북한 핵실험에 얼마나 불쾌하게 받아들이는지를 읽을 수 있었다"며 "리셉션 인사말에 이런 내용을 넣은 걸로 보면, 앞으로 중국의 강경한 대응 수위를 짐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재룡 대사는 부부동반으로 참석했다. 지 대사는 베이징 주재 기간이 길어 외교단 가운데서도 지인이 많은 편에 속한다. 한 소식통은 "지 대사가 자연스레 여러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지만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김장수 주중 대사도 이 자리에 참석했으나 지 대사와의 대화는 없었다.

리셉션이 끝난 뒤 지 대사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중국 외교부 청사에서였다. 밤 10시가 넘은 심야였다. 북한 정부에 대한 공식 항의를 전달하기 위해 외교부가 지 대사를 초치한 것이다.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튿날인 7일 오후 내외신 브리핑에서 "중국은 6일 북한 핵실험에 대한 반대 입장을 성명으로 발표했고 더 나아가 외교부 고위층이 주중 북한 대사관의 책임자에게 (항의한다는 뜻을) 명백히 밝혔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지만 외교부 당국자는 본지 기자에게 "전날 밤 지 대사를 초치한 걸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베이징=예영준 특파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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