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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절하지 마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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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그녀는 세상을 원망했습니다. 왜 이리 불공평할까. 그래서 따지기 시작합니다. 신을 향해서요. 매일 몇 시간씩 기도했습니다. 그 속에서 소리쳤습니다. 울부짖었습니다. 왜 공평하지 않으시냐고요. 몇 년을 그랬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녀가 펜을 듭니다. 시를 씁니다. 아무것도 배운 거 없는 그녀였습니다. 그런데 시를 씁니다. 뒤틀리는 몸을 움켜쥐고서요. 한참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완성된 시에 제목을 붙입니다. '나'.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본 것을 보았고 /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달라진 건 없었습니다. 그 무엇도 말입니다. 모든 건 그대로였습니다. 제자리였지요. 그러나 달라졌습니다.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하나도 빠짐없이요.

세상은 세상 그대로였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보는 눈이 바뀌었습니다. 그동안은 올려봤습니다. 그때의 나는 한없이 작았습니다. 그러다가 내려봤습니다. 그때의 나는 한없이 컸습니다. 감사가 싹텄습니다.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요.

그녀는 세상에 나옵니다. 휠체어를 타고서요. 뒤틀리는 입으로 희망을 말합니다. 1500회의 강연을 했습니다. 뒤틀리는 손으로 시를 씁니다. 24권의 책을 냈습니다. 그의 시에 노래가 붙습니다. 100여 곡의 노래가 나왔습니다. 12년 동안의 일입니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그녀는 보이지 않습니다. 전신마비가 됐습니다. 말도 못 합니다. 글도 못 씁니다. 10년째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을 감사하니까요. 그래서 살 수 있는 겁니다.

보름이 지났습니다. 새해가 시작된 지요. 고작일지 모릅니다. 벌써일지도 모릅니다. 사람마다 느낌이 다를 겁니다. 이미 좌절을 경험한 분이 있을 겁니다. 그러나 좌절하지 마세요. 세상이 좌절을 준 게 아닙니다. 또 다른 내가 나에게 준 좌절입니다. 내가 좌절로 보기 때문이지요. 끝이라면 좌절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끝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희망일 수 있습니다. 기회일 수 있습니다.

송명희도 살아갑니다. 나는 그녀보다 나을 겁니다. 그 때문에 포기해선 안 됩니다. 송명희가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우리에게 포기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나라가 어렵습니다. 정치가 엉망입니다. 경제도 그렇습니다.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어둡게만 보지 마세요. 자꾸 어두워만 집니다. 모두가 그래선 안 됩니다. 감사할 걸 찾아보세요. 그게 빛입니다. 빛을 향해 가세요. 송명희도 그랬습니다.

모든 걸 감사하세요. 고난도 감사하세요. 아픔도 감사하세요. 슬픔까지도 감사하세요. 송명희처럼 말입니다. 일어날 수 있을 겁니다. 걸어갈 수 있을 겁니다.

이연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