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오늘까지 신령님 돈 올려 그래야 살아" 거짓말 무속인… 처벌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기사 이미지

무속인은 굿 값으로 약 18억원을 요구했다. [사진 중앙포토]
(※이 사진은 해당 사건과 관련이 없습니다.)

굿을 하지 않으면 결혼하기 어렵고 사업에 재앙이 생긴다

2008년 12월 무속인 이모(42·남)씨와 제자 신모(32·여)씨가 운영하는 굿 당을 찾았던 A씨는 이씨의 말에 불안감이 엄습했다.

이씨가 한 케이블방송 프로그램에서 용한 무속인으로 소개됐던 터라 불안감이 더 했다. 이씨 등은 이듬해 3월 굿을 해주고 A씨로부터 '굿 값' 1500만원을 받아냈다. 이후 같은 방식으로 2011년 5월까지 이씨 등이 A씨로부터 받아낸 돈은 모두 149차례에 걸쳐 17억9193만원이나 됐다.

이들은 또 2011년 2월 A씨가 투자자들로부터 '투자금을 가로챘다'는 혐의로 고소당하자 "경찰에 로비해 사건을 무마시켜 줄 테니 돈을 보내라"며 그해 3월부터 4월까지 한 달 동안 13회에 걸쳐 1억 2100만원을 받아챙겼다.

A씨가 상당한 채무가 있어 카드 돌려막기를 하는 등 자금압박에 시달리고 있음을 알고도 "요번에 무리해서 가는 거 아는데 돈 쫌이라도 가져오라" "오늘까지 무조건 신령님 돈 올려, 그래야 당신이 살아" 등의 문자를 보내며 굿을 하도록 부추겼다.

굿 값으로 인해 더욱 경제사정이 악화된 A씨는 지난해 3월 이들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 등으로 고소했고 검찰은 같은 달 이씨 등을 재판에 넘겼다.

재판에서 무속인들은 "A씨의 부탁으로 굿을 해주고 협의가 끝난 대가를 받았을 뿐 현혹하거나 강요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심 재판부는 "피해자의 절박한 심리를 파고들어 무속행위를 하지 않으면 해악을 입을 것처럼 적극적으로 속였다"며 유죄로 판단했다. 이씨와 신씨에게 각각 징역 2년 형을 내렸고 이씨만 항소했다.

이씨를 유죄로 본 것은 항소심도 마찬가지였다.
서울고법 형사4부(부장 최재형)는 이씨에 대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한 1심을 깨고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죄질이 나쁘지만 피해자를 위해 2억 5000만원을 공탁했고 피해자와 원만히 합의해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 등을 고려해 법정구속은 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혁준 기자 jeong.hyukju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