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일보 폐간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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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러시아 등 옛 소련지역의 고려인(한인)들을 대변해 온 일간지 고려일보가 28일로 창간 80주년을 맞았다. 고려일보는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공화국 제2의 도시 알마티에서 고려인들이 한국어와 러시아어로 발행한다.

이 신문이 이날 알마티의 한국교육원에서 연 기념행사에는 러시아 각지의 고려인과 다른 소수민족 언론인, 한국 언론인 등 수백명이 참석했다. 70여년의 역사를 가진 알마티 고려극장 소속의 가수.배우.놀이패의 축하공연도 벌어졌다.

고려일보는 심각한 재정난으로 언제 문을 닫을지 모른다. 그래서 80주년을 축하하는 자리임에도 시종 무거운 기운이 감돌았다. 이날 열린 기념토론회에서도 재정난 해소책이 가장 큰 주제였다. 고려일보의 채유리(40) 주필은 "한국 정부 및 동포들의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소련 붕괴와 함께 고려일보는 쇠락의 길을 걸어왔다. 한때 1만3천부에 이르던 발행부수는 1990년대 이후 3천부까지 줄었다. 카자흐스탄 정부의 지원도 크게 줄었다. 한국의 재외동포재단과 언론재단이 매년 지원하는 2만여달러가 가장 큰 수입원이다.

고려일보는 일제 강점기인 23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아방가르드'(신봉)란 이름으로 창간됐다. 나라를 잃고 타국에 왔지만 민족의 글과 문화는 지키자는 것이 창간 취지였다.

37년 스탈린의 명령으로 극동지역에 거주하던 한인들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하는 수난 속에서도 신문의 맥은 끊기지 않았다. 아방가르드는 강제 이주 1년 뒤인 38년에 카자흐스탄의 크즐오르다에서 제호를 레닌기치로 바꿔 발행을 재개했다.

80~90년대에는 재러 한인 작가들이 소설.시.학술논문 등을 적극적으로 게재해 고려인의 정체성을 살리면서 문화의 구심점 노릇을 했다.

알마티=유철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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