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파업] 산업 피해 현장르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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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파업으로 산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시멘트 회사 등 철도 의존도가 높은 업체들의 피해가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파업이 장기화할 경우 기업들의 수송 차질은 물론 물류 비용도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수출 업체도 제품을 제때 공급하지 못하는 등 피해가 예상된다.

○…일요일인 29일 오후. 수도권 물류 거점인 의왕시 경인컨테이너기지(ICD) 맞은편에 위치한 의왕역 구내는 썰렁했다. 철로에는 컨테이너와 시멘트를 실은 채 부산항으로 내려가지 못한 50개 열차가 비를 맞은며 기관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무실에는 비노조원과 간부 등 7~8명이 지친 모습으로 대기 비상 근무를 하고 있었다.

"26일 아침 출근해 아직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어요." 피곤한 모습의 이준구 역무팀장은 정부와 조합원들이 합리적으로 대화해 사태가 빨리 끝나기를 고대했다.

28일 시작된 파업으로 역에 돌아오지 않는 조합원은 모두 16명. 전체 근무자(43명)의 40%다. 하지만 모두가 기관사 등 핵심 요원이어서 화물열차의 발이 묶여 있었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파업 당일인 28일, 20개 열차가 4백여량에 컨테이너와 시멘트를 가득 싣고 부산.광양.군산항으로 떠나야 했다. 그러나 핵심 요원들이 모두 빠져 나가 4개 컨테이너 열차만 부산으로 머리를 돌렸다. 이날도 적재 작업이 끝난 11개 열차가 부산항으로 떠날 예정이었으나 새벽에 한개 열차만 갔을 뿐이다. 비상 근무 요원을 다 동원해도 자정까지 5개 열차 정도만 운행이 가능한 형편이다.

서울 상암동의 시멘트 출하 기지. 평소 같으면 시멘트를 기차에서 내리고 트럭에 옮겨 싣느라 분주했던 이곳에 정적이 감돌았다. 3천여평 규모의 기지 옆 철로엔 운반용 기차 6대가 멈춰 서 있었다.

시멘트 수송 전용 차량 18대도 저장 탱크 뒤편에 나란히 쉬고 있었다. 15명 정도가 근무하던 저장 탱크 옆의 출하기지 관리사무소에는 4명의 직원만이 나와 사무실을 지키고 있다.

이곳은 충청북도와 강원도 지역에서 생산된 시멘트가 열차로 들어와 서울 서부지역과 경기 북부의 레미콘 공장에 시멘트를 공급하는 곳이다. 하루 평균 출하량은 6천여t에 이른다. 수도권의 주요 시멘트 공급 기지의 하나다.

○…업계의 피해도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지방 출하 기지에 재고가 적은 성신양회의 경우 28일 각 지역 출하 기지의 재고가 바닥나자 대체 운송 수단인 벌크트럭 확보에 나섰으나 이마저 쉽지 않아 고심하고 있다. 시멘트업계에서는 철도 운송을 트럭 운송으로 전환할 경우 t당 3천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해 하루 1만t의 시멘트를 철도로 수송했던 업체의 경우 하루 3천만원 이상의 물류비 증가가 불가피할 것으로 분석했다.

강원도 동해에서 충북 영월까지 거리가 워낙 먼 데다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유연탄을 트럭으로 수송할 경우 철도 수송보다 t당 6천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는 설명이다.

한일시멘트.아세아시멘트.현대시멘트 등 충북 내륙지역에 시멘트공장을 갖고 있는 다른 시멘트 업체들도 지방 출하 기지의 재고가 2~3일 내에 바닥나 시멘트 공급에 상당한 차질이 빚어질 전망이다.

이 경우 직접적인 피해를 보는 곳은 시멘트를 원자재로 사용하고 있는 건설업계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 대형 건설업체 관계자는 "대형 토목공사 현장을 제외하고는 시멘트 재고를 별로 확보하고 있지 않다"며 "도심 내 아파트나 오피스텔 공사의 경우 시멘트 공급에 차질이 오면 당장 공기 지연 등의 피해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가전 업계도 철도 파업으로 인한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의왕 컨테이너 기지에서 하루에 나가는 컨테이너 5백개 중 25~30개 정도를 부산항까지 철도로 운송해 왔으나 철도 파업에 대비해 대부분의 물량을 차량 운송으로 대체해 놓았다.

의왕=최형규.염태정 기자 <chkcy@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jongta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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