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원 칼럼] '언론' 때문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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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장마와 더불어 무더운 여름철이 시작되었다.

이렇게 날씨가 무더울 때는 에어컨이 있는 건물이 아니면 그 무슨 시원한 소식이라도 있었으면 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를 속시원하게 만드는 소식은 없고 모두 짜증만 나게 하는 것들뿐이다.

노조 파업 소식은 이미 많은 사람에게 익숙해진 메뉴지만 파업이 있을 때마다 격화되는 것 같은데 정부는 점점 더 힘이 빠지는 것 같아 걱정된다. 북한 핵 문제도 우리 국민 다수가 이미 익숙하다 못해 지겹게 느끼는 사건이지만 아직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 정부 힘이 빠지는 우울한 소식들

교육도 이미 영원한 위기에 빠진 것 같고, 이른바 영화 쿼터 문제로 대미 무역의 틀도 제대로 짜지 못하고 있는 것도 한심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걱정되는 것은 경제다.

성장보다 분배를 더 중요시한다는 말도 들리고 시장경제에 충실하기보다 독일식 사회경제 모델을 따른다는 이야기도 있다. 잘못하면 독일처럼 남미형 경제가 될 수도 있다고 한다. 참으로 우리를 우울하게 만드는 뉴스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우리를 걱정하게 만드는 이런 모든 것이 언론이 정부가 '잘한 것은 빼고 갈등만 보도'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그러면 언론이 '갈등은 빼고 잘한 것만'보도하는 체제에서는 과연 모든 것이 잘되기만 할까? 의심스럽다.

물론 언론이 전하는 뉴스는 좋은 소식이 아닌 경우가 많게 돼 있다. '뉴스'라는 개념이 그렇다. 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가 아니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뉴스가 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정상적인 것은 뉴스 가치가 없고 비정상적인 것은 뉴스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잘한 경우에는 아무런 뉴스도 없고 보도될 사건도 없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뉴스거리가 될 뿐만 아니라 언론이 파고들 만한 이야깃거리가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정부가 잘못하는 것만 골라서 보도하는 언론이 없어지고 잘한 일, 또는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들만 보도하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오늘의 바그다드가 바로 그런 경우에 속한다고 한다. 사담 후세인 통치하에서 이라크의 언론들은 '잘한 일'만 보도했는데 그 결과로 지금 이라크 사람들은 그 무슨 언론보도도 믿지 않는다고 한다.

바그다드 시민들은 언론보도에 의존하기보다 상상력을 동원하는데, 가령 예를 들면 바그다드 시민의 대다수는 지금 사담 후세인은 살아 있을 뿐만 아니라 미 중앙정보국(CIA)과 러시아의 연방보안부(FSB)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하와이 안전가옥에서 잘 지내고 있다고 믿는다고 한다. 그리고 만일 후세인이 죽었다면 1989년에 사망했고 그동안은 사담을 닮은 더블이 대행했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그래도 재미있고 무해한 이야깃거리라고 할 수 있겠지만 문제는 전후 이라크에 민주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이라크 국민이 일반 보도매체가 전하는 소식을 믿을 수 있어야 하는데, 사담 후세인이 죽었을 가능성조차 인정하지 않는 이라크 국민을 어떻게 하면 언론보도를 믿게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로 남아 있다.

*** 문제 있으면 더 크게 보도해야

'갈등'은 보도하지 않고 '잘한 것만' 보도하기로 명성이 높은 언론은 북한 언론이다. 김정일은 남한 텔레비전 뉴스라도 보는지 모르지만 북한 주민들은 그야말로 '갈등' 없는 사회에 살고 있다. 불쌍한 일이다.

우리 문제로 돌아와서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 언론들이 '잘한 일'만 보도하지 않고 '갈등'을 보다 크게 보도하는 것은 다행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열심히 최선을 다했는데도 잘된 부분은 무시하고 문제가 있었던 부분만 크게 다룬 것을 보았을 때 열심히 일한 사람의 입장에서 큰 '실망과 분노'를 느끼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공인이 된 입장에서는 아무리 무더운 장마철에도 그러한 실망과 분노는 스스로 썩이는 편이 결국은 이긴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을 줄 안다.

머지않아 가을은 오게 되어 있다.

김경원 사회과학원 원장.고려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