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케스 10년 만의 신작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번역 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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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당대 최고의 이야기꾼으로 꼽히는 콜롬비아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사진·78)의 최신 화제작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송병선 옮김, 민음사)이 나왔다.

이 소설은 지난해 10월 중남미와 스페인에서 첫 선을 보였을 때부터 숱한 화제를 낳은 작품이다.

1994년 '사랑과 또 다른 악마들에 관하여'를 발표한 뒤로 10년 동안 소식이 뜸했던 작가다. 그 사이 마르케스는 림프암을 앓았고, 한때 사망이 임박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그 수런거리는 소문을 뒤로 하고 이 소설이 나온 것이다.

원래 출간 날짜는 지난해 10월 26일. 그러나 일주일 전부터 해적판이 서점가를 휩쓸었다. 초판만 100만 부를 찍었고, 스페인과 중남미에서 출간과 동시에 '다빈치 코드'를 제치고 단박에 베스트셀러 1위로 올라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1~3위를 오르내리고 있다. 1982년 '100년 동안의 고독'으로 노벨 문학상을 받기 전부터 스페인어권을 대표하는 최고의 작가였던 마르케스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는 현존하는 순수 문학 작가 가운데 가장 많이 팔리는 작가다.

줄거리는 제목처럼 다소 망측하다. 90세 생일을 자축하기 위해 열네살의 어린 창녀와 섹스를 하기로 마음먹은 한 노인의 이야기다. 노인 앞에 나타난 소녀는 업주들이 먹인 약에 취해 깊은 잠에 빠져 있다. 소녀를 묵묵히 바라보며 노인은 생애 처음으로 사랑이란 감정을 느끼고….

줄거리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소설은 다분히 자전적이다. 주인공은 작가와 마찬가지로 노인이고, 전직 언론인이다(익히 알려진 대로 마르케스는 일간지 기자 출신이다). 주인공 노인은 514명의 여성과 관계를 가졌고, 작가의 여성관은 "용서할 수 있는 실수가 무엇이냐"는 한 잡지 기자의 질문에 "허리 밑에서 저지르는 실수"라고 답한 유명한 일화에서 잘 드러난다. 그래서인가. 주인공은 단지 '서글픈 언덕'이란 별명만 노출될 뿐 이름이 없다. 소설은'나'란 노인이 연신 중얼거리는 고백체를 고수한다.

번역된 책의 분량은 모두 144쪽. 소품에 가깝다. 그렇다고 대가의 태작(怠作)이라고 단정짓기엔 무리가 있다. 작가는 이 소설의 두가지 모티브를 밝혔다. 82년 비행기 안에서 잠자는 여인을 7시간이나 지켜본 일화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잠자는 미녀의 집'(이 작품도 노인과 소녀의 성과 사랑을 다룬다)을 감명깊게 읽었다는 고백이다. 그렇다면 20년이 넘도록 고민을 거듭했다는 얘기다.

그리고 번역본에선 알기 어렵겠지만, 마르케스는 이미 사어(死語)가 된 스페인어를 부러 사용했다. 콜롬비아에서만 쓰는 어휘도 등장한다. 콜롬비아에서 줄곧 살아온 아흔살 노인의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서다. 하여 소설 어휘록이 한동안 인터넷을 떠돌기도 했단다.

많은 원로가 작품을 발표하지만 '지금.여기.나'의 문제를 말하는 원로는 많지 않다. 그러나 마르케스는 현재 자신의 이야기를 말한다. 이 소설이 반가운 가장 큰 이유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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