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 칼럼] 特種과 속보 경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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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현대 측이 박지원씨에게 건넸다는 1백50억원 비자금의 중개, 돈세탁에 간여한 김영완씨 집 강도사건은 시사해 주는 것이 많은 참으로 별난 사건이다. 잃어버려도 신고도 못할 깨끗지 못한 돈이 많다는 운전기사의 교사가 사건의 발단이었다. 1백억원 이상을 빼앗기고도 피해자가 자세한 진술을 피하고 소문이 안 나기만을 신경썼다고 한다.

*** 쉬쉬한 배경 철저히 추적해야

사건조사를 金씨 집 부근 호텔에서 한 서대문경찰서 측은 서울시경찰청에 서면보고도 하지 않은 채 쉬쉬했다. 그 과정에는 당시 서울경찰청장 등 경찰 고위층과 청와대비서실의 관여가 있었다는 것이다. 더구나 기막힌 것은 피해자 金씨가 검거된 운전기사와 다른 범인들의 선처를 탄원했고, 운전기사에게는 변호사까지 대줬다는 것이다.

23일자 중앙일보는 1면 기사로 이 사건을 특종 보도했다. 다음날부터 타지들이 일제히 이 기사를 받은 것은 물론 앞서거니 뒤서거니 속보경쟁이 지속되고 있다. 첫 보도가 앞서서인지 사건의 새로운 측면을 발굴하는 데도 상당기간 중앙일보가 앞섰으나 27일자에선 경쟁지에 밀린 인상이다.

경쟁지들은 1면에 金씨가 남북 정상회담 예비접촉 시기에 박지원씨가 갔던 싱가포르와 중국에 있었다는 사실을 크게 보도했다. 특히 조선일보는 강도 용의자 및 동료 재소자 취재를 바탕으로 金씨의 강도 피해액이 1백80억원이고, 수사과정에서 수사관들이 범인들과 호텔에서 양주파티를 벌였다는 내용 등을 3개 면에 걸쳐 집중 보도했다.

김영완씨가 뉴스의 인물로 처음 등장한 것은 박지원씨 구속과 관련돼서였다. 朴씨가 金씨를 통해 현대 쪽에 돈을 요구했고, 현대가 朴씨에게 건넨 1백50억원을 金씨가 맡아 돈세탁했다는 것이다. 그에 대해 소개한 19일자 중앙일보 5면 박스는 그를 실명 보도한 타지와 달리'무기거래상 金모씨'라고 익명으로 표기했으며, 朴씨와의 관계나 그의 행적에 대한 묘사도 미흡했다.

金씨 강도사건에 국민의 이목이 쏠리는 것은 사건 자체가 흥미롭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렇게도 쉬쉬하며 감추려 했던 이유가 무엇인지, 왜 경찰과 청와대까지 쉬쉬하는 데 힘을 보탰는지, 혹시 강도당한 돈에 문제의 비자금 일부가 파묻혀 있지는 않은지, 박지원씨와 金씨가 정말 어떤 관계인지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 이런 점에 초점을 맞춘 속보를 기대한다.

지난 2주간의 기사 흐름을 보면 16일자 여러 신문에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초 안 받겠다고 공언했던 국정원장의 직보를 받고 있다는 기사가 실렸으나 중앙일보는 빠졌다.

21일자 경쟁지들은 盧대통령의 후원회장이었던 이기명씨의 용인 땅을 매입하기로 처음 계약했던 강금원씨 소유 창신섬유의 모포 군납 및 하자처리 과정의 특혜논란을 크게 보도했으나 중앙일보엔 보이지 않았다. 姜씨와 盧대통령의 각별한 관계는 이미 널리 알려진 일이어서 이런 기사가 빠지면 중앙일보가 권력의 눈치라도 보는 것으로 오해받을까 걱정이다.

*** 권력주변 의혹 빠뜨리면 오해

24일자 신문에서는 단연 동아일보의 김수환 추기경 인터뷰 기사가 눈에 띄었다. 같은 쓴소리라 하더라도 지금 같은 어려운 시기에, 유일하다시피한 존경받는 원로의 가감없는 쓴소리라 한결 무게가 느껴졌다. 중앙일보는 다음날 이 보도를 토대로 金추기경의 고언을 사설로 다뤘다.

25일자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약속이나 한 듯 이건희 삼성회장의 천재경영론에 대한 기획시리즈를 일제히 연재하기 시작했다. 지금처럼 평균론자들의 목소리가 큰 세상에서 천재경영론은 깊이 천착하고 본격적으로 짚어볼 가치가 있을 것 같다.

한겨레 칼럼에서 이회창.장상씨의 행태를 비판했던 정연주 KBS사장의 군대 안 간 두 아들이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기 6년 전에 이미 병역면제를 신청해 병역면제됐다는 기사가 27일자 경쟁지들에 크게 보도됐으나 중앙일보는 鄭씨 관계기사를 연거푸 보도하지 않았다.

성병욱 중앙일보 고문.세종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