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남자의 책 이야기] 전통과 보편성 접점찾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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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어권의 중요한 문화 행사로 마드리드 도서전이 있다. 62회인 올해는 지난 5월 30일부터 6월 15일까지 '세 문화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열렸다.

유대교, 이슬람, 기독교, 이들 세 문화가 공존했던 역사를 지닌 스페인은 그 역사를 바탕으로 도서전을 통해, 첨예한 국제적 관심사에 대해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졌다.

스페인에서 무슬림.유대인.기독교인들이 공존의 문화를 형성했던 시기는 8세기말부터 15세기까지이다. 시리아 지역에서 경쟁 세력에 패해 이베리아 반도로 축출된 무슬림 세력의 압 알-라만이 공존과 관용의 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무슬림 정복자들은 피정복민 고유의 사회.정치.종교 질서를 파괴하거나 강제로 재편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하여 미국의 저명한 스페인.포르투갈학 학자 마리아 로사 메노칼(예일대 휘트니 인문학센터 소장)의 '세계의 영예: 무슬림, 유대인, 기독교인은 어떻게 중세 스페인에서 관용의 문화를 창조했나?'가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미국의 서평지 대부분이 이 책을 9.11 테러 이후 변화된 정세와 관련하여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고 평가했다.

물론 책에 대한 비판적인 평가도 있다. 1066년 그라나다의 유대인들이 학살당하기도 했고, 1126년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모로코로 노예로 팔려가기도 하는 등, 관용과 공존 일변도였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지적이다.

때문에 이 책은 리처드 플레처의 '무어인의 스페인'이나 L. P. 하베이의 '이슬람 스페인 1250-1500'같은 이 분야의 다른 책들과 함께 읽는 게 좋다. (이상 모두 미번역.)

여기에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보편적인 공감대를 형성시킬 수 있는 의제를 설정하는 능력이다. 칼리 피오리나 HP 회장은 스탠퍼드 대학 시절, 중세 원전을 일주일에 몇 백 장씩 읽고 2쪽 분량으로 요약하는 수업을 가장 좋아했다.

조지 앤더스의 '칼리 피오리나'(해냄)에 따르면, 피오리나는 이 지적인 유격코스를 '생각의 몸에서 지방을 정제하고 의미의 본질에 도달하는 작업'이었다고 회고한다. 앤더스는 피오리나가 미국 재계의 대표적인 슬로건 주창자가 된 것이 바로 당시의 수업 덕분이라고 평가한다.

우리는 서울 국제도서전을 매년 개최한다. 2005년에는 세계 최대의 도서전인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우리나라가 주빈국으로 참가하게 된다고 한다. 도서.출판과 관련한 행사들을 통해 우리는 과연 어떤 의제 혹은 슬로건을 세계에 내놓을 것인가?

우리의 역사적 경험과 문화 전통을 알리는 홍보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2%' 아니 그 이상이 부족하다. 우리의 특수성과 인류 공통의 관심사가 만나는 접점으로서의 의제를 찾을 필요가 있다.

표정훈 출판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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