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상황 비상사태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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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화 국회의장이 16일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쟁점 법안 직권상정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정 의장은 이날 직권상정에 대해 “제가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법적으로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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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들을 얘기 없다.”

정의화, 경제법안 직권상정 거부
“경제 어렵지만 의장은 법 따라야
청와대에 법 근거 찾아달라 부탁”
법전 들고 나와 국회법 조항 읽어

“현기환 ‘국회 밥그릇 챙기기’ 표현
저속할 뿐 아니라 합당하지도 않아”

 정의화 국회의장은 16일 오후 2시50분 새누리당 원내지도부와 회동한 지 5분 만에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원유철 원내대표 등이 ‘경제활성화법 등 주요 법안 심사기일 지정(직권상정) 촉구 결의문’을 전달하는 자리였다. 정 의장은 “국회선진화법하에서 직권상정 요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지 않느냐. 이럴 시간에 야당과 합의하려고 노력하라”고 충고했다. 원 원내대표가 “지금은 (선진화법) 찬반을 떠나 국내외적으로 위기인 심각한 상황”이라며 “직권상정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했으나 정 의장은 요지부동이었다.

 정 의장은 오전 11시30분 기자간담회에선 “경제가 어렵다는 것은 누구보다 인식하고 있다”며 "(직권상정을) 안 하는 것이 아니고 법에 따라 못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법전을 펼쳐 ‘국회법’도 인용했다. 그는 “국회법 85조에 국회의장이 심사기일을 지정할 수 있는 경우가 세 가지인데,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에 가능하다. 지금 경제 상황을 그렇게 볼 수 있느냐 에 동의할 수 없고, 자문한 법률 가들의 의견도 같다”고 했다.

 반면 선거구획정안에 대해선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인데 선거구 획정이 안 되면 참정권에 심대한 훼손을 가져오기 때문에 ‘입법비상사태’라 할 수 있다. 12월 31일이 지나면 입법비상사태로 지칭할 수 있고, 연말연시께 ‘특단의 조치’로 심사기일을 지정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밝혔다. 이 대목에서 문답이 오갔다.

 -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은 “선거법만 직권상정한다면 국회가 자기들 밥그릇 챙기기법만 직권상정했다는 비판을 면할 길 없을 것”이라고 했다.

 “‘국회의원 밥그릇 챙긴다’는 표현은 저속할 뿐 아니라 합당하지도 않다. (여권에서) 정치적으로는 무리한, 초법적 발상을 할 수 있지만 의장이 초법적 발상을 가지고 행하면 오히려 나라가 혼란스러워진다. 어제 청와대에서 메시지(메신저)가 왔길래 그렇게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찾아봐달라고 부탁했다.”

 - 청와대의 직권상정 요청이 국회의 입법권 침해라고 보지는 않는지.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일어난 것이므로 이것이다, 저것이다 말하고 싶지 않다.”

 ◆미합의 땐 현행 선거구+시·군·구 분할 제안 =정 의장은 선거구 획정에 여야가 합의하지 못하면 현행 지역구 246석, 비례대표 54석을 유지하면서 선거구 간 인구 편차를 2대 1로 줄이기 위해 시·군·구 분할을 허용하는 방안을 거론했다. 이럴 경우 광범위한 ‘게리맨더링’이 벌어질 수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정 의장은 여야 합의 불발 시 의장안을 직권상정할 것이냐는 질문에 “현행 지역구와 비례대표 의석수는 13년간 이어져 온 여야의 합의 내용이라 결국 그것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현행 숫자대로 가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길 수 있으므로 시대 상황을 봤을 때 시·군·구 벽을 허물어 줘야 하지 않느냐는 부분에 대해 여야가 충분한 논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 의장은 “ 균형의석제(지역구 득표율을 비례의원 수에 반영)는 도입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며 “다만 야당이 제시하는 선거권자 연령을 18세로 낮추는 방안은 여당에서 심도 있게 검토해볼 수 있는 수준까지 갔다”고도 했다.

글=박유미 기자 yumip@joongang.co.kr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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