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사시가 금수저·흙수저 논란 비화 … 법률 소비자 입장 고려가 우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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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7호 7 면

A씨는 고위 법관의 아들로 10년 가까이 사법시험에서 번번이 고배를 들었다. 아버지와 같은 법조인이 되기 위해 노력했지만 실력과 운이 따라주지 않았다. A씨는 방향을 틀었다. 사시를 고집하는 고시낭인이 되는 대신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진학을 결정한 것이다. 로스쿨을 졸업한 뒤 변호사가 됐고 대형 로펌에 취직했다.


사시 존치와 로스쿨을 둘러싼 대립이 금수저·흙수저 논란으로 비화되는 양상이다. 사시 준비생과 대한변호사협회, 대한법과대학 교수회 등 일부 법조인은 A씨와 같은 사례를 들어 ‘로스쿨이 희망의 사다리가 아닌 현대판 음서제가 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누구나 응시해 법조인이 될 수 있는 사시와는 달리 로스쿨은 학비(연 1500만원)가 비싼 데다, 고위 인사가 자식의 로스쿨 입학과 로펌 취업 등에 부적절한 청탁을 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최근 신기남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변호사 시험에 떨어진 아들 학교를 찾아가 로스쿨 원장을 만난 것으로 드러나 부적절한 행위를 했다는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과 사시 폐지론자들은 음서제 프레임이 억지라고 주장한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음서제 논란은 존치론자들이 국민의 감성을 자극하는 프레임으로 본질을 왜곡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로스쿨 출신의 한 변호사는 “로스쿨 제도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침소봉대하고 있다”며 “오히려 로스쿨 제도보다 사시 제도가 갖고 있는 관료적 문화와 기수 서열, 고시낭인 양산 등이 더 큰 폐해를 드러냈다”고 비판했다.


한국법조인협회장인 김정욱(로스쿨 1기) 변호사는 “로스쿨 출신은 상대적으로 엘리트 의식이 강하지 않고 다양한 경험과 전공의 변호사들이 배출된다”며 “법률 서비스의 문턱을 낮추는 데 상당한 기여를 했다고 평가한다”고 말했다. 이어 “일부 사시 출신은 특권의식이 강하고 끈끈한 기수 문화를 앞세우기도 한다. 로스쿨 출신이 많아지면서 그런 부분이 구조적으로 해소되면 법률 서비스도 좋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한법학교수회장인 백원기 인천대 교수는 “로스쿨 도입 전부터 사시 출신 중에는 법학뿐 아니라 다양한 전공의 합격자가 나오고 있었다”며 “다양한 분야의 전문성 있는 변호사를 양성한다는 로스쿨의 도입 취지가 반감된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로스쿨 출신 변호사 중에는 법학 전공자들에 비해 법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며 “국민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고 오히려 피해를 주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사시와 로스쿨의 어색한 동거는 언제까지 이어질까. 법무부는 지난 3일 사시 유예 입장을 내놓은 지 하루 만인 4일에는 ‘의견일 뿐 확정된 게 아니다’며 에둘렀다. 사시 존치도, 로스쿨 폐지도 아닌 ‘유예’라는 어정쩡한 형태는 한동안 이어질 전망이다. 법조계에선 이런 상황을 신중하되 조속하게 정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장주영 기자 jang.joo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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