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운전 처벌 피하려 의사가 '혈액 바꿔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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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음주운전으로 단속되자 혈액채취에 의한 재측정을 요구한 뒤 다른 사람의 혈액을 대신 경찰에 제출한 혐의(음주 및 증거위조 등)로 불구속기소된 경기 분당 모 병원 산부인과 의사 2명이 26일 법정구속됐다.

기소된 지 7개월여 만에 열린 첫 공판에서다. 재판부가 선고 재판이 아닌 첫 재판에서 피고인들을 법정구속한 건 드문 일이다.

법원과 검찰에 따르면 이 병원 산부인과 의사 A씨(33)는 지난해 6월 말 밤 동료 의사들과 회식을 한 뒤 귀가하다가 경찰의 음주운전 단속에 걸렸다. 첫 측정 결과는 혈중알코올 농도 0.075%. 면허 정지 수준이었다. 李씨는 곧바로 혈액채취에 의한 정밀 측정을 요구했고 단속 경찰관은 이를 받아들였다.

李씨는 혈액 채취를 위해 자신이 근무하는 병원으로 가면서 직원들에게 SOS를 쳤다. 처음 전화를 받은 당직 간호사는 피를 바꿔치기 해달라는 李씨의 부탁을 거절했다. 다급해진 李씨는 당직을 서던 산부인과 과장 B씨(38)에게 매달렸다. B씨는 다른 후배 의사인 C씨 등에게 다른 병동에 근무하는 간호사의 피를 뽑아오게 했다.

결국 입회 경찰관이 응급실 밖에서 기다리는 틈을 타 李씨의 혈액과 간호사의 혈액을 바꿔치기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조직적인 조작극은 곧 들통이 났다.

첫 음주 측정 수치와 혈액을 통한 측정치가 지나치게 큰 차이가 나는 것을 의심한 경찰관의 집요한 추궁 때문이었다.

사건을 송치받은 수원지검 성남지청은 지난해 말 이 병원 의사 5명이 직.간접적으로 가담한 사실을 밝혀냈다. 그리고 이 중 A, B씨를 불구속 기소, C씨를 벌금 5백만원에 약식기소했다.

그러나 사건을 맡은 성남지원 형사3단독 은택(殷澤) 판사는 수사자료 검토 후 C씨도 직권으로 정식재판에 회부했다.

문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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