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미혹을 따르지 않는 손속의 전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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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본선 16강전 1국>
○·김지석 4단 ●·스 웨 5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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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보(26~36)=문 앞에서 화사하게 꽃망울을 터뜨린 매화 한 송이. 저절로 눈과 손이 이끌려갈 것 같은데 부드러운 무당검은 미혹을 따르지 않고 27로 젖혀간다.

 무당검의 묘리는 후발제인(後發制人)이다. 먼저 치지 않는다. 치고 들어온 상대의 힘을 부드럽게 흘리듯 감싸고 응축해 더 큰 힘으로 되돌려 친다. 알기 쉽게 비유하면(꼭 같지는 않지만) 복싱의 크로스카운터랄까.

 ‘참고도’ 백1로 끊어달라는 게 스웨의 주문. 흑2로 단수 활용하고 손을 돌려 좌하귀 흑4로 미끄러진다. 전국을 조망하면, 백이 우변에서 두텁게(?) 제자리걸음할 때 흑은 사방에서 활발하게 움직이는 구도.

 28은 두텁지만 중복의 느낌이 있는 데다 느리다. 그렇다고 그냥 손을 뺄 수도 없는 건 그때 단수 한방을 얻어맞는 게 너무 아프기 때문인데 기다렸다는 듯 좌상 쪽으로 뛰어오른 29가 절호의 요처.

 스웨는 무당검뿐 아니라 작정한 듯 태극권까지 선보이는데 김지석의 매화검은 우상귀 쪽에서 반짝 한 송이 터뜨리고는 이내 향기마저 시들어버린다. 뭔가 잘 풀리지 않는다.

 아직 우열을 논할 만큼 어느 쪽으로도 기울진 않았으니 형세의 문제는 아니다. 우하일대 흑 세력 깊숙이 뛰어든 36의 각오가 심상치 않다.

손종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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