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상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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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승하(1960~) '상처' 전문

산 개미가 죽은 개미를 물고
어디론가 가는 광경을
어린 시절 본 적이 있다
산 군인이 죽은 군인을 업고
비틀대며 가는 장면을
영화관에서 본 적이 있다

상처입은 자는 알 것이다
상처입은 타인한테 다가가
그 상처 닦아주고 싸매주고
그리고는 벌떡 일어나
상처입힌 자들을 향해
외치고 싶어지는 이유를

상한 개가 상한 개한테 다가가
상처 핥아주는 모습을
나는 오늘 개시장을 지나가다 보았다.



'폭력과 광기의 나날'로 점철된 인류사는 아직 끝없다. 더욱 조직화되고 전면적이다. 개들도, 어쩌면 개미까지도 학살 대상이다. 의사와 간호사로는 그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 흥분해 봤자 별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외치지 않을 수 없다. '상한 개가 상한 개의 상처를 핥아주는 모습'을 보아라! 이 분노를 보아라!

박덕규<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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