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끓는 가마솥에 던져진 생닭 신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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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본선 32강전 B조>
○·펑리야오 4단 ●·나 현 5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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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보(188~201)=88은 공격이 아니다. 거리를 두고 전체를 조망하면 알 수 있는데 좌변, 하변, 중앙까지 이어진 거대한 백의 군집은 놀랍게도 아직 미생이다. 넉넉하게 이겼다고 확신한 흑이 늦추고 있을 뿐이지 언젠가 퇴로가 끊긴 뒤 A의 곳을 흑이 먼저 찌르면 백 전체의 파멸을 막을 방법이 없다.

 90을 본 검토진이 쓴웃음을 짓는다. ‘그것까지 받아달라고?’ 아니다. 펑리야오가 이 시점에서 90을 둔 의지를 달리 해석하면 ‘돌을 거둘 명분을 찾는 수’이고 뒤 이은 91이 그런 명분에 호응하는 결단일 수도 있지 않을까.

 검토진이 보여준 ‘참고도’의 진행이면 만사휴의(萬事休矣), 차단된 좌변 백 대마는 a, b 맞보기로 살아있지만 중앙 백 대마는 털이 뽑힌 채 끓는 가마솥에 던져진 생닭 신세다.

 95로 몰아갈 때 지켜보는 모든 관전자가 마음 속으로 ‘끝났네!’를 합창했을 것 같은데 나현의 손은 96에 97로 젖혀 예상로를 벗어났다. 계속해서 99, 101은 백A의 치중으로 살라는 경고인데 옥쇄를 각오했던 펑리야오가 이제 와서 백A로 고분고분 살까.

 “조금 더 가겠는데?” 검토실의 젊은 프로들도 바둑판 위의 돌을 걷다 말고 다시 모니터를 지켜본다. 어차피 결과는 바뀌지 않겠지만….

손종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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