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뀌는 세계 석유 지도] 이란 美 주도 석유지도의 '공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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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이라크와 국경을 맞댄 이란의 석유 매장량은 세계 5위다. 이란은 동쪽으로는 9.11테러 이후 미군이 진입한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과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서북쪽으로는 카스피해 유전지대, 동북쪽으로는 중앙아시아 석유.가스 매장지와 연결된다.

미국의 입장에서 이란은 그야말로 석유 요충지다. 앞으로 석유를 무진장 얻을 수 있는 잠재적 석유창고이자, 카스피해의 석유를 주요 소비지로 실어나를 수 있는 지름길이다.

그러나 미국과 이란은 핵개발과 테러지원 여부를 놓고 날카롭게 대치하고 있다. 1979년 호메이니의 이슬람 혁명으로 친미 팔레비 왕조가 무너진 다음해에 미국은 이란과의 외교관계를 단절했다.

미국은 95년에는 핵개발 등을 이유로 자국 기업들에 이란과의 무역을 전면 금지했다. 그렇게 기름이 많은 이란이 핵발전소를 짓는 데는 다른 목적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97년엔 미국에서 활동하는 외국 기업이 이란에 연 2천만달러 이상을 신규 투자하면 제재를 할 수 있게 했다. 대신 미국은 이란의 석유를 사지 못했고 이란 영토를 지나는 석유 공급망 건설에도 참가하지 못했다.

미국과 이란이 태도를 바꿔 관계 개선에 나서거나 이란의 신정(神政)체제가 바뀌지 않는 한 미국의 이란 진출은 불가능하다. 최근 이란에 반정시위가 벌어지자 이란은 미국의 사주를 받았다고 주장하고, 미국의 지도자들은 반정시위를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이란은 미국의 경제봉쇄에 맞서 프랑스.이탈리아.말레이시아 등의 석유회사들과 발빠르게 계약해 석유생산을 확대해왔다. 때문에 미국의 경제봉쇄는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이란은 94년 카스피해 연안 아제르바이잔의 유전을 개발해 이란의 정유시설에서 가공, 수출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이 강력히 반발해 아제르바이잔이 이란의 유전개발 참여를 취소했다. 미국의 세계 석유 전략상 이란이 카스피해 유전지대로 진출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면에서 미국이 '악의 축'으로 낙인 찍은 이란은 '전세계 석유 지도'에서 중앙의 공백으로 남아 있는 셈이다.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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