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뀌는 세계 석유 지도] 이라크 매장량 2위의 석유창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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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이라크의 석유 매장량은 사우디아라비아 다음으로 세계 2위인 1천1백25억배럴로 추정된다. 미국 내 석유 매장량 2백20억배럴의 다섯배에 해당한다. 하지만 지난해 석유 생산량에서는 세계 12위에 불과했다. 매장량에 비해 생산량이 얼마 안돼 그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는 나라다.

그러나 미국은 이라크전 이전에는 이라크의 유전 중 어느 한곳의 개발권도 확보하지 못한 상태였다. 프랑스의 토털피나에프는 마즈눈 유전을, 러시아의 루코일은 웨스트 쿠르나 유전을, 중국의 석유천연가스집단공사도 알아흐다브 유전의 개발권을 따냈다.

베트남과 우리나라까지 사담 후세인 정부와 유전 개발 협상을 진행할 정도로 세계 각국이 안정적인 석유 수급을 위해 앞다퉈 이라크에 뛰어드는 동안 미국은 전혀 석유 개발에 참여하지 못한 것이다.

1972년 석유산업을 국유화한 이라크는 90년대 들어 외국 석유 메이저들과 석유 공동개발 협정을 맺기 시작했다. 그러나 91년 미국이 주도한 걸프전 이후 미국의 석유 메이저들과는 협상을 진행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세계 최대 석유 소비국이자 지난해 이라크가 생산한 원유를 가장 많이 사들인 나라, 미국은 정작 이라크의 유전 개발에는 손도 못대고 있었다. 이라크전은 미국이 이라크의 유전을 노려 치른 '석유 전쟁'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이 이라크에서 본격적인 석유 개발에 뛰어들면 안정적인 석유 공급원을 확보하게 된다.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석유를 무기로 세계 경제에 행사했던 영향력도 미국이 이라크의 원유 생산량을 조절해 버리면 그 힘이 급격히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이라크 유전개발에 투자했던 유럽과 러시아.중국도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미국과 어떤 식으로든 타협해야 한다. 그래서 이라크는 미국엔 그 자체로 새로운 석유 수급원일 뿐 아니라 '석유 통제'를 통한 국제적인 주도권 확보의 지렛대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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