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게임의 법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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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그가 생각하는 걸 나도 생각한다고 그가 생각하리라는 걸 나는 생각한다….' 게임을 할 때 상대방의 의중을 파악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동시에 상대방이 자신의 행동을 어떻게 생각할지도 고려해야 한다. 게임 참여자가 모두 상대의 의중을 추리하면서 움직인다는 점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포커나 바둑이 전형적인 게임이다. 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실제 인물인 수학자 존 내시는 1950년에 쓴 박사학위 논문 '비협력적 게임'으로 게임 이론을 정립해 44년 뒤인 94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노사 협상이나 불법 파업에 대한 정부와 노조의 협상도 대표적인 게임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규칙이 있고 불법적 행동에 대한 불이익도 명시된 가운데 서로 상대방의 수를 읽으면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모든 전략을 구사한다.

81년 8월 미국에서 급여 인상, 근무시간 단축 등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인 1만3천여명의 항공관제사에 대해 레이건 행정부는 48시간 내에 복귀하지 않으면 무조건 해고하고 재취업까지 금지한다고 공표했다. 이를 엄포로 여긴 노조는 파업을 계속했다. 그러나 레이건은 비행을 통제하고 군 인력까지 동원하면서 당시 전체 관제사의 70%인 1만1천여명을 해고했다.

84년 영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탄광 노조가 정부의 석탄산업 구조조정 계획에 맞서 총파업에 나섰다. 당시 마거릿 대처 총리는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법이 폭도의 논리에 제압될 수 없다"며 1년여 동안 경찰력을 동원해 정면 대응했다. 대처 정부도 웬만하면 타협하던 과거 정부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노조의 판단은 빗나갔고, 결국 노조는 백기를 들었다.

불법 파업에 대한 정부의 강경 방침이 '신뢰'할 만한 위협으로 받아들여지면 경제적인 측면에서 볼 때 노조는 파업을 포기하는 편이 유리하다. 하지만 정부가 일관성없이 타협을 한다면 파업을 계속하는 노조가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연세대 정갑영 교수는 이를 '고장난 신호등'에 빗대 설명한다. 정부가 일관된 신호를 보내면 협상의 질서가 쉽게 균형으로 가지만 신호가 오락가락하면 교통사고가 나게 마련이라는 얘기다. 불법 파업에 엄격히 대하겠지만 대화와 타협을 통해 문제를 푸는 게 선행되어야 한다는 현 정부의 신호는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이세정 경제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