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포럼] 노동개혁 미룰 이유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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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대통령을 포함한 정부 인사들의 노조에 대한 발언과 태도가 상반되는 경우가 많아 혼란스럽다.

현 정부의 친노조 성향을 부인하는 얘기를 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노조 측의 도덕성과 책임을 강조하면서 불법 파업에 대해서는 강경 대응한다는 으름장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막상 분규가 터지면 대화와 타협을 앞세워 노조 쪽에 유리한 방향으로 결말을 유도하곤 한다는 비난을 듣고 있다. 이런 현상을 세밀하게 분석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노무현 대통령이 노조문제의 핵심과 개선방향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다만 지금 당장 이런 문제들을 고치려 들지 않는 것은 역시 내년 총선을 의식한 때문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자신의 지지세력인 노조를 섣불리 건드리기보다는 총선이 끝난 후에야 노동부문에도 본격적인 개혁을 추진한다는 복안을 갖고 있을 것으로 짐작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 계산으로 현안의 해결을 앞당기거나 미룬다고 해서 그것이 나중에 반드시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보장은 없다. 과거 경험을 보더라도 선거용 잔머리 대책들 때문에 정부나 국민이나 상당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경제와 관련된 사례로 먼저 1985년 총선을 들 수 있다. 당시 전두환 정부의 경제참모들은 너무 앞당겨 경기를 부양시키기 보다 총선에 임박해 활황 분위기로 몰고가야 한다는 계산 아래 부양책의 실시시점을 늦춰 잡았다. 그러나 경제가 그들 생각대로 움직여 주지는 않아 선거일까지 계속 경기침체는 계속됐다.

권위주의 정부에 대한 반감이 팽배한 가운데 경제운영까지 실패하다 보니 결국 여당인 민정당은 총선에서 참패하고 말았다. 선거에 지고 경제는 경제대로 더욱 어려워졌으니 그야말로 게도 구럭도 다 놓친 격이었다.

이와는 달리 김대중 정부팀은 대선을 염두에 두고 일찍부터 경기부양에 몰두했다. 2000년 말부터 성장률이 크게 떨어지자 부동산 경기의 진작을 도모하는 한편 가계소비를 부추겼다. 신용카드의 남발이나 은행권 가계대출의 급속한 증가도 묵인됐다.

그 결과 2001년 3분기에 1.9%까지 떨어졌던 성장률이 2002년 2분기에는 6.4%까지 치솟았고 대선이 임박한 그해 11월에 발표된 3분기 성장률 또한 5.8%를 기록했다. 여당의 노무현 후보 당선에 적지않은 힘이 됐다는 점에서 정략적 대응이 일단 성공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 경제에 엄청난 후유증을 몰고왔다. 가계부채가 급증하면서 소비를 압박하기 시작했고 개인신용불량자가 양산됐다. 경기가 급격히 냉각하는 가운데 부동산 투기바람이 전국을 휩쓸었다. 새 정부는 아직도 그 뒤치다꺼리에 여념이 없는 실정이다.

인위적인 경기부양에 못지 않게, 선거를 의식한 자의적인 노동개혁 연기 또한 경제에 큰 타격을 안겨줄 수 있다. 일부 노조의 과격하고 불법적인 집단행동과 이에 대한 정부의 미온적인 대응은 외국인투자자들을 불안케 하며 국내 기업의 생산 투자활동을 위축시키고 있다.

정부는 노동개혁을 총선 후로 미룰 것이 아니라 당장 추진에 나서야 한다. 노동개혁이라고 해서 엄청난 내용이 아니라 단지 노조가 법과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盧대통령은 지금부터는 지지세력이라 하더라도 과한 행동은 나무라고 이 개혁이 장기적인 국익과 노동자의 복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는 점을 설득해 나가야 할 것이다.

노성태 경제연구소장 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