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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여성 얼굴에 침 뱉으며 "네 고향으로 가"…미국의 이슬람 공포

중앙일보

입력

최근 프랑스 파리 테러 이후 무슬림(이슬람 교도)에 대한 증오 범죄가 빈발하면서 미국 내 무슬림들이 2001년 9·11테러 직후와 같은 공포와 불안감을 느낀다고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NYT에 따르면 특히 히잡(무슬림 여성들이 머리에 두르는 스카프)을 쓴 여성들이 각종 폭력의 표적이 되고 있다. 최근 뉴욕 브루클린에선 한 남성이 두 명의 무슬림 여성에게 접근해 팔꿈치로 밀치고 얼굴에 침을 뱉으며 “너희들의 사원에 불을 지르겠다”고 위협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남성은 협박 등의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하지만 이처럼 표면화된 사건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피해를 입은 무슬림 대부분이 경찰에 알려도 소용없다는 생각에 신고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무슬림 여대생 페리다 오스만도 그런 경우다. 그는 지난 24일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누군가로부터 침 세례를 받았다. 그에게 침을 뱉은 인물은 “테러리스트, 네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소리친 후 사람들 속으로 사라졌다.

이날 오스만은 지하철에서 세 번이나 경찰의 가방 수색을 당했다. 그는 “더 이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편은 아무도 없다는 생각에 끔찍한 고독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뉴욕 출생의 무슬림 대학생 사메야 오마르헤일도 비슷한 일을 당했다. 시험시간에 늦어 달려가던 그를 한 남성이 일부러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다. 이 남성은 오마르헤일 옆에 담배 꽁초를 던진 뒤 발로 밟아 끄며 “네 나라로 돌아가라”는 말을 내뱉었다. 오마르헤일은 “너무 겁이 나 당시엔 아무 말도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이슬람권익단체인 미국이슬람관계위원회(CAIR) 뉴욕 사무소의 사디아 칼리케는 “9·11테러 이후 무슬림 사회를 겨냥한 적개심이 이토록 커진 것은 처음”이라며 “나는 두렵다”고 말했다.

무슬림 사회는 파리 테러 이후 유독 이슬라모포비아(Islamophobia, 이슬람에 대한 증오)가 증가하고 있는 데는 대선을 앞둔 미 정치권 상황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공화당 대선 후보들이 경쟁적으로 무슬림에 대한 자극적인 발언을 쏟아내고 있는데다, 도널드 트럼프의 경우 무슬림을 추적하는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겠다는 얘기까지 하고 있다. CAIR은 “그 같은 발언들이 반(反)이슬람 정서를 부추겼다”며 “이슬람혐오증이 미국 사회의 주된 흐름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무슬림 사회도 자구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모스크에 철제 보호막을 설치하고, 안에서 잠기는 빗장을 설치하는 등 모스크 공격을 막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담은 팸플릿이 배포되고 있다. 소셜미디어에선 ‘무슬림 여성이 반드시 알아야 할 5가지 호신책’ 등이 공유되고 있다. 위급한 상황에서 뛰어가기 편한 옷을 입으라는 내용 등이다.

최근 무슬림 사회에서 빠르게 퍼지고 있는 안전수칙은 무슬림들이 느끼는 공포가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케 해준다.

“지하철을 기다릴 때는 플랫폼 끝에 서있지 말라.”“어두워진 후엔 혼자 걷지 말고 여러 사람들과 함께 걸으라.”“항상 경계를 게을리하지 마라.”

젊은 무슬림들은 친구에게, 이맘(이슬람 성직자)은 신도들에게, 부모는 등교하는 자녀에게 이 수칙을 지키라고 당부하고 있다.

뉴욕=이상렬 특파원 i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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