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제임스 후퍼의 비정상의 눈

지구의 눈물을 찾아서 남극 입구까지 갔더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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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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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후퍼
JTBC ‘비정상회담’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전 출연자

지난 몇 주간 연구 조사차 남극 코앞에 있는 남대서양 사우스조지아 섬으로 답사를 다녀왔다. 섬을 덮고 있는 거대한 빙하 지형을 직접 썰매를 끌고 다니며 살펴보고, 드릴로 빙상(빙하 얼음 덩어리)을 시추해 원통형의 빙상 코어를 뽑아 올리는 작업도 했다. 퇴적된 빙하는 수만 년에 이르는 지구의 역사에서 나타났던 주요 기후학적 변화의 증거를 담고 있다. 따라서 이번에 채취한 빙상 코어를 분석하면 최근 몇 년간 지구 북반부와 북극해의 빙하들을 빠른 속도로 녹인 기상이변과 기상패턴의 변화가 남반구와 남극지역에서도 일어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남위 54도 전후에 위치한 사우스조지아 섬으로 가는 바닷길은 험난했다. 남극의 차가운 얼음물에 둘러싸인 데다 거센 서풍이 끝없이 불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은 극지로 향하는 따뜻한 바람을 완전히 차단한다. 그래서 바로 이 섬부터 차가운 남극권이다.

 이런 극지대까지 간 이유는 이곳의 빙하가 기후변화로부터 안전한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북극해처럼 남극대륙의 빙하도 녹는다면 지구 전체의 해수면을 급격히 상승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라는 시한폭탄의 시계는 이미 초읽기에 들어갔다. 정말로 더 늦기 전에 멈출 방법을 찾을 수는 없을까? 다음주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되는 유엔 기후변화당사국총회가 그 어느 때보다 중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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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동안 해수면의 상승으로 남태평양 섬들과 저지대인 방글라데시 등에서 수많은 사람이 삶의 터전을 잃었다. 기후변화 관련 회담이 열리면 회담장 부근에서 수많은 사람이 언론을 향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노력한다. 이러한 집회와 평화로운 시위는 그동안 기후변화의 피해를 겪고 있는 사람들의 유일한 소통 방법이 돼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올해는 이런 소중한 소통 기회를 잃게 될 것 같다. 파리에서 벌어진 테러의 여파로 프랑스 정부가 이번 총회 기간 중 기후변화 관련 단체의 집회를 금지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인류의 미래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일반인들이 발언할 기회를 잃게 되면 특정 이익집단의 움직임에 굴복할 가능성이 커진다. 기후변화는 시급하고 중대하며, 전 인류를 위해 무거운 책임을 느껴야 할 사안이다. 그럼에도 이번 총회에서 협상은 겉돌고 기후변화 원인을 치료하기도 힘들어질 것 같은 분위기다. 사우스조지아의 눈부시게 아름다운 빙하 지형들은 점점 사라질 테고, 지구가 기후변화로부터 벗어날 가능성도 점차 희박해질 테고…. 참 안타까운 일이다.

제임스 후퍼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전 출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