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 70일 성과] 청와대·국정원·현대 공모 5억불 對北 송금 확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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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환 특별검사는 23일 수사기한 연장 요청이 거부된 데 대해 "정치권 고려에 의해 수사가 중단된 점에 대해 아쉬운 마음 금할 길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특검 수사의 승인권자인 대통령의 뜻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수사 기간이 끝날 때까지 최선을 다해 수사를 마무리하겠다"고 덧붙였다.

대북송금 의혹을 파헤쳐온 특검팀 수사는 이렇게 미완(未完)으로 70일간의 일정을 마무리하게 됐다. 정상회담 전인 2000년 4월 현대그룹이 1백50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막판의 성과에 마침표를 찍지 못하게 된 건 특히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현대그룹 당시 관계자들의 주장대로 이 돈이 박지원씨에게 정말로 전달됐는지, 그렇다면 그 명목은 무엇이었는지를 밝히는 일은 결국 검찰이나 또 다른 특검으로 넘겨야 할 입장이 된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국가정보원.현대그룹이 공모해 5억달러를 북한에 보냈다는 사건의 윤곽, 그리고 그 과정에서의 위법행위자들을 밝혀내 사법처리 대상에 올린 것은 특검팀의 개가다.

구체적으로 2000년 6월 박지원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과 이기호 청와대 경제수석.임동원 국정원장 등이 만나 현대그룹 지원 문제를 논의한 것이 드러났다.

이후 이기호 수석이 이근영 당시 산업은행 총재와 만나 이런 입장을 전달하고 사실상의 압력을 넣어 산업은행이 현대상선에 4천억원을 대출하도록 했다. 이로 인해 朴씨와 이기호 전 수석이 구속됐다. 또 대출금 회수가 어렵다는 것을 알고도 대출 지시를 한 이근영 전 총재와 박상배 부총재는 기소(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업무상 배임)됐다.

5억달러 송금은 국정원이 외환은행 쪽과 협의해 이뤄졌음이 확인됐다. 특검팀은 송금 당시 재경부 장관에게 신고하지 않은 혐의(외국환 거래법 위반)로 최규백 전 국정원 기조실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임동원 전 국정원장 및 송금에 개입한 외환은행 관계자들에 대한 사법처리도 25일 수사종료 직전 있을 전망이다.

이번 수사의 본질 중 하나인 '대북 송금과 남북 정상회담의 관련성'에 대해선 특검팀도 막판까지 고심 중이다. 특검팀은 송금된 돈 가운데 가장 큰 덩어리인 현대상선의 2억달러가 북한에 전달된 시점이 당초 약속시한(2000년 6월 9일)보다 사흘 늦은 6월 12일이었음을 확인했다.

북한이 정상회담을 돌연 연기한 시점이 6월 10일이라는 점에서 입금 지연이 정상회담 연기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또 현대 측으로부터 넘겨받은 '대북경협 일지'에 5억달러의 송금 사실과 북한과의 경협 합의 사실이 누락된 점도 정상회담과의 관련성을 입증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정상회담이 현대와 북한의 경협 논의 과정에서 출발한 점 등으로 미뤄 특검은 북한에 보내진 5억달러가 정상회담과 경협의 성격을 함께 띠었다는 이른바 '패키지'론으로 결론내릴 것으로 보인다.
전진배.이수기 기자allons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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