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 특검연장 거부] 盧 '지지층 달래기' 차선 선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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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대북 송금 특검의 수사 기간 연장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북 비밀 송금과 새로 불거진 1백50억 비자금은 법리상 분리해 수사해야 한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청와대 나름대로 마련한 절충안인 셈이다.

盧대통령이 수사 기간 연장 요청을 거부한 것은 민주당의 손을 들어준 격이다. 여기엔 법리적 검토와 함께 정치적 고려도 담겼다고 청와대 참모들은 밝히고 있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지지층이나 한나라당 중 어느 한쪽의 거센 반발이 예견되는 상황에서 지지층의 동요라는 최악의 상황보다는 차악을 택한 셈이다.

물론 남북관계가 악화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고려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盧대통령은 1백50억원에 대한 수사의 길을 열어놓음으로써 야당과 여론의 반발을 최소화하려고 했다.

23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盧대통령은 거듭 1백50억원 부분의 엄정한 처리를 강조했다. 특검법의 입법취지상 수사 막바지에 불거진 1백50억원 부분은 별개라는 해석을 달면서다. 盧대통령은 이렇게 해서 특검의 연장요청을 거부한 것이 1백50억원에 대한 의혹 규명을 거부하는 게 아님을 분명히 해두고자 했다.

이 와중에 盧대통령은 1백50억원에 대한 수사 주체 문제는 다소 우회했다. 검찰이 맡도록 할 것인지 새 특검이 하도록 할 것인지는 국회가 결정할 일이라고 공을 넘긴 것이다.

당초 법무부와 검찰은 특검에서 처리하길 원했고, 특검이 盧대통령의 판단을 구했던 1백50억원 수사 주체 문제는 盧대통령이 다시 정치권에 넘기는 핑퐁게임의 양상이 됐다.

盧대통령은 여야가 제2특검에 합의하면 이를 수용하고, 합의에 실패하면 그때 가서 검찰에 수사 지시를 내려도 늦지 않다는 생각인 것 같다.

또 이 문제에 대한 협상의 여지를 남겨놓음으로써 26일 이후 새로 구성될 한나라당 지도부와 대화를 해보려는 생각인 듯하다.

이와 관련, 문재인(文在寅) 민정수석은 "아직까지 검찰에 대한 불신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수사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비판과 함께 (검찰 수사 도중) 또다시 특검을 하자는 논란이 끼어들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의 결정으로 盧대통령은 당초의 특검안과 특검연장안을 놓고 한나라당의 찬성과 민주당의 반대 사이에서 한번식 번갈아 지원해준 모양이 됐다.

이 같은 선택을 과연 한나라당과 민주당 지지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에 따라 앞으로 盧대통령의 정국 운영은 힘을 받게 되거나, 아니면 정반대가 될 전망이다.
강민석 기자ms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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