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도망자 '해방'… 보석된 뒤 전국 떠돌며 숨어 살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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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미끼로 여자들에게 수억원을 뜯어낸 혐의로 기소됐던 사기범이 16년간의 도피 생활 끝에 재판시효가 만료돼 면죄부를 얻었다.

무역.건설업을 하는 재미동포 실업가로 행세했던 金모(61)씨는 1985~87년 여성 3명에게 접근, 사업자금 명목으로 모두 7억1천여만원을 받아 가로챘다. 당시 그는 "미국에 가서 결혼해 살자"며 이혼녀.미망인 등을 유혹했다.

자신들이 속았다는 것을 알게 된 피해 여성들의 고소로 金씨는 87년 3월 경찰에 붙잡혀 사기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그러나 그는 그 해 7월 신병 치료를 이유로 구속집행정지를 받아 풀려났으며, 이후 보석으로 석방되고 나서 자취를 감춰버렸다.

재판부는 金씨가 보석기간 만료 후에도 나타나지 않자 보증금을 몰수하고 구속영장을 발부했지만 金씨를 찾는 데 실패했다. 검찰 역시 金씨 가족 중 일부가 미국에 있다는 것에 착안, 출입국자 명단을 뒤졌지만 金씨의 출국기록은 없었다.

金씨의 소재가 오리무중인 채 지난해 3월 金씨가 기소된 지 15년이 지났다. 그리고 한달 뒤 金씨는 변호인을 통해 "면소 판결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면소란 기소된 후 15년 동안 확정판결을 받지 못한 경우 공소시효 완료로 간주해 처벌을 면해 주는 것이다.

金씨 변호인에 따르면 金씨는 96년 미국 시민권을 얻었으며, 시효가 끝난 지난해 여름에는 프랑스 파리로 출국, 심장수술까지 받았다고 한다. 현재 金씨의 주거지는 형님 집으로 돼 있으나 전국을 떠돌아다니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지법 형사합의23부(재판장 金秉云부장판사)는 24일 金씨에 대해 "기소된 뒤 판결 확정없이 15년이 지난 사실이 인정된다"며 면소 판결했다.

김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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