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헷갈리는 정부 입장] '본때'와 '대화' 오락가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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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조흥은행 파업)에 본때를 한 번 보여주었으면 했는데 합의를 해 본때를 보여줄 수가 없겠더라고요."

노무현(盧武鉉)대통령이 23일 전국 근로감독관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파업에 대해 의외로 강한 '본때'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말 그대로라면 정부는 상당히 강경한 대응을 준비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이광재 청와대 국정상황실장도 "조흥은행 노조와의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22일 오전 5시에 공권력을 투입할 계획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모처럼 보여준 정부의 엄정대응 의지가 앞으로 예정돼 있는 파업사태에서 '계획'에 그치지 않고 과연 '실천'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盧대통령 스스로 같은 자리에서 "'처벌을 하는 것이 원칙이고 협상하는 것은 원칙이 아니다'고 말할 수 있나"고 되물으며 "공권력 투입할 것은 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합의해서 합시다"라고 말했다. 김진표(金振杓) 경제부총리도 불법파업에 대해 한편으로는 '엄정대응'을 강조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대화와 타협'을 중시하겠다고 했다.

대통령과 경제정책의 최고책임자의 말이 앞으로 불법파업이 또다시 일어날 경우 '정부는 어떻게 하겠다'는 확실한 메시지를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본때'와 '대화'라는 양 극단의 표현을 번갈아 사용하는 바람에 무엇이 정부의 진정한 입장인지 헷갈리기 십상이다.

이것이 재계는 물론 전체 사회적으로도 파업에 대한 불안감을 불러일으킬 위험이 크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당장 교통대란을 불러올지도 모를 궤도노조(대구.부산.인천 지하철노조)에 대해서는 정부 내부에서 엇박자가 나오고 있다.

이들이 파업에 들어갈 경우 이것이 합법인지, 불법인지 등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부처간 견해가 상충되고 있는 것이다. 합법인지, 불법인지에 따라 파업에 들어갔을 때 대처방법은 판이하게 달라진다. 파업 돌입 24시간 전까지 부처간 견해차가 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파업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기는 더 어렵다. 이런 사태가 계속될 경우 경제는 물론 나라 전체가 불안하게 돌아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당장 정부가 공권력을 동원할 의사가 없다면 여론이라도 불법파업을 견제해야 한다는 대안도 나온다.

이상민 한양대(사회학)교수는 "앞으로 많은 집단이 목소리를 크게 낼텐데 여론의 두려움을 느낀다면 행동은 스스로 조절할 것"이라며 "정부는 파업의 정당성이 시장과 사회에서 평가받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기찬.이상렬.장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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