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초월한 사랑' 토고 남성에 법원이 난민 불인정 내린 까닭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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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토고 출신의 A씨는 지난 2012년 11월 단기방문(C-3) 사증으로 입국한 뒤 곧바로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에 난민인정 신청을 했다. 난민 신청 사유란에 “본국에서 무슬림 여자친구의 가족으로부터 살해당할 위기에 처했다”고 적었다.

한국으로 오기 5개월 전인 2012년 6월, A씨는 토고에서 여자친구를 만나 교제하기 시작했다. 독실한 무슬림이었던 여자치구의 가족들은 A씨가 가톨릭 신자라는 이유로 교제를 반대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사랑을 키워나갔고, 여자친구는 임신을 하게 됐다. 그러자 여자친구의 오빠는 A씨를 폭행하고, 여자친구에게 낙태약을 먹였다. 여자친구는 넉달 뒤인 10월 낙태약 부작용으로 목숨을 잃었다. 여자친구의 오빠가 A씨에게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하자 A씨는 지인을 통해 한국비자를 발급받고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하지만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는 A씨가 난민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상 ‘박해를 받게 될 것이라는 충분한 공포’를 가진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A씨는 이의신청이 기각되자 소송을 냈다.

법원의 판단도 다르지 않았다.

서울행정법원 행정4단독 김수연 판사는 A씨가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를 상대로 낸 난민불인정결정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고 8일 밝혔다. 김 판사는 ^원고가 직접적인 박해를 받은 정황을 확인할 객관적인 증거가 없는 점 ^박해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 박해가 인종이나 종교, 국적, 정치적 견해 등 난민협약 상 박해로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는 점을 제시했다.

김 판사는 “원고는 난민면접 당시 여자친구 가족을 만난 적은 없고 전화로 살해 위협을 받았다고 진술했다”며 “그 정도의 위협을 박해를 야기하는 행위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이어 “여자친구 가족의 사적 보복에 불과해 본국 내 사법절차에 따라 해결해야 할 사안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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