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운명은 아시아 손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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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아시아권 국가들이 미 달러화의 흐름을 좌우하고 있다.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AWSJ)은 23일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권 국가의 중앙은행들이 미 국공채를 1조달러(약 1천2백조원) 이상 보유하고 있어 이들의 움직임이 달러의 운명을 결정짓는 결정적 요인이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들 국가가 채권 매각에 나설 경우 달러화가 폭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 재무부 채권을 가장 많이 사들인 나라는 일본으로, 지난 3월 현재 3천8백66억달러어치를 보유하고 있다. 중국이 일본 다음인 1천1백77억달러어치를 갖고 있으며 홍콩(4백98억달러)과 한국(4백18억달러)이 그 뒤를 잇고 있다.

특히 일본은 지난달에 엔화 강세를 저지하기 위해 미국 등 외국채권을 사들이는 방법으로 3백40억달러어치의 엔화를 국제시장에서 매각했다.

사실 아시아권 국가들이 미 국공채를 사들인 지는 꽤 오래 됐다. 미국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화를 가장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방법이 미 국공채를 사들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 국가는 재무부 발행 채권 뿐 아니라 프레디 맥 같은 주택저당회사(모기지 회사)의 채권 등 국공채를 꾸준히 사들였다.

문제는 아시아 국가의 미 국공채 선호 덕분에 미국 정부는 적은 비용으로 재원을 마련할 수 있어 미국 경제에 도움이 되었지만 그만큼 위험도 커졌다는 것이다.

메릴린치사는 "만약 이들 국가가 채권을 현금화할 경우 달러화에 대한 요구가 크게 늘면서 미국 국가신용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 정부와 금융시장 관계자들은 최근 아시아권 국가들이 미국 내 투자를 재고할 가능성을 걱정하고 있다고 AWSJ는 전했다. 특히 최근 발생한 프래디 맥의 회계 부정사건이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우려다.

미국 정부가 최근 달러화 가치 하락을 방조하는 듯한 자세를 보이는 것도 문제다. 아시아 국가들이 달러 대신 유로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AWSJ는 그러나 아시아권 국가들이 달러화에 발을 너무 깊이 들여놓았기 때문에 빠져 나오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들 국가가 달러화를 팔려고 할 경우 보유하고 있는 채권을 현금화하기 전에 달러화 가치가 폭락해버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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